우유 속의 항생물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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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족의 건강을 돌보고, 아기를 기르며, 하루하루의 식단을 꾸려 나가야하는 우리 나라 주부들이 오늘날 식품「노이로제」에 걸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게끔 돼가고 있다.
참깨·고수·땅콩 등 농작물과 병어·문어 등 어류에서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보고에 이어, 이번에는 또 순정식품으로 불리는 우유에까지 항생물질이 잔류해있어 인체에 유해하다는 판정이 나왔으니 말이다.
우리가 상식하는 대수산물과 함께 발육기의 어린이와 성인의 영양식품으로 없어서 안될 우유까지도 이렇듯 하나같이 유해물질에 오염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문생존의 기저를 무너뜨리는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우유에 항생물질이 함유되는 것은 젖소의 유방염 등 질병치료에 항생제를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낙농의 관리적 측면에서 볼때「페니실린」등 의약품 사용이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낙농의 생산수준이 이만큼 향상되고 유제품의 보급이 오늘처럼 확대되기 까지에는 젖소의 질병퇴치 등 생체관리에 항생제와 같은 의약품이 확실히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의축적 첨가물은 안정성의 원리에 근거한 허용기준이나 사용에 따른 안전수칙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데서 언제나 문제가 된다.
우유에 함유된 항생물질이나 농수산물에서 검출되는 농약의 중금속성분은 비록 미량이라도 반복적으로 섭취 할때는 그 높은 농축배율의 원리에 의한 집적이나 내성으로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때문에 이 같은 물질의 사용에는 그 사회적 효용과 안전성이 균형을 이루는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제한돼야 하는 것이다.
1955년, 일본 강산현을 중심으로 근기·중국·사국 일대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삼령, 비소우유』 중독사건은 첨가물의 효용성에만 치우친 나머지 안정성을 소홀히 한데서 빚어진 무서운 결과의 좋은 본보기다. 우유의 변질을 막기위해 분유제조 과정에서 비소성분의 제2인산「소다」를 남용함으로써 비롯됐던 이 사건은 그 당시 1만2천명 이상의 인공영양유아를 희생시켰으며 그 피해자들 중에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뇌신경장애 등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것이다.
외국의 경우 젖소에 항생제를 투약했을 때는 그뒤 최소한 3일 이내에 짠 우유는 동물에만 먹이도록 돼있다.
우리 나라도 축산물 가공처리법에 이와 유사한 규제 조항이 있기는 하다. 특히 식품위생법에는 모든 식품에는 항생물질이 일체 포함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이같은 법규들이 하나같이 지켜지지 않는 채 형식에 그치고있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는 위법유해식품에 대항하는 사회적 장치가 극히 미약하다. 특히 식품학 관계에 있어서는 제조개발분야에 비해 안전성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실적이 극히낙후돼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인간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근원적 사상이 결여돼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가 아무리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있다해도 국민이 식생활의 위기를 호소하게됐다는 현실은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견지에서 식품기업은 좀더 깊은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함께 행정당국도 유해·부정식품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가공스런 폐해를 생각하여 단1점의 유해불량식품을 생산·판매하는 경우에도 최고의 중형에 처할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식생활이 안전하고 풍요한 가운데 영위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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