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유인촌 배우·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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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세르반테스(1547~1616) ‘돈키호테’ 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세르반테스의 이 구절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청소년기 필독서 중 하나여서 의무감에서 읽었는데 이 시구가 머리를 쳤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였을까. 좌충우돌 방황하고 방랑하다가 결국 연극에 나를 바치려 결심했을 때 떠오른 인물도 돈키호테였다. 나는 돈키호테처럼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그 뒤로 평생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내 삶에 이 다섯 줄 시가 늘 함께한다.

목돈으로 나를 유혹하던 밤무대나, 연예계에서 어지러운 손길이 드리울 때마다 이 시를 외웠다. 내가 나약해져 있을 때, 그 무언가를 향해 전진하고 무모하게 달려들 때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는 주문이다.

 젊은 친구들,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이 구절을 읊어준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그들이 자기 작업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 돈키호테는 돈키호테를 알아보는 법이다. 연극·미술·영화·음악·만화 등 예술 하는 청년들이 맘 놓고 새로운 미래 예술을 개척하게 큼직한 융합의 난장, 몽상의 판을 하나 벌이는 게 늙은 돈키호테의 꿈이다.

유인촌 배우·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