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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말하는 아시아의 새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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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강일구
강일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어제 중국 상하이에서 ‘아시아 상호협력 및 신뢰구축회의(CICA)’가 개막됐다. 이틀 일정으로 46개 국가 및 기구의 지도자가 참석하고 있다. CICA는 1992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제창으로 만들어진 지역안보협의체다. 역내의 평화와 안전, 협력을 정치적 대화를 통해 풀자는 게 설립 취지다. 24개 회원국이 있으며 우리는 93년부터 옵서버로 참석하다 2006년 정식 회원이 됐다.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물론 중국에서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 쏠리는 관심은 비상하다.

 CICA는 올해 중국 외교의 양대 이벤트 중 하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014년 중국 외교의 특징을 ‘개최국 외교(主場外交)’라 말한다. 상반기 상하이에서 CICA를 통해 아시아 안보를 논의한다면 하반기엔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해 경제를 토의하겠다는 것이다. 준비에 소홀할 수 없다. 상하이 시정부는 이미 지난 10일부터 22일까지 시내에서의 소형 무전기 사용, 폭죽 터뜨리기 등의 행위를 전면 금지시켰다. 학교도 본회의 날인 오늘 하루 쉰다.

 중국이 상하이 행사에 이처럼 정성을 쏟는 이유는 무얼까.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로 중국을 이끌고 있는 시진핑(習近平)이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 아시아에 새로운 안보 질서를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봤다. 평화를 쟁취하고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전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의 생각은 달랐다. 시대의 흐름은 전쟁과 폭력이 아닌 평화와 발전이라 믿었다. 그래서 내놓은 게 ‘냉정히 관찰하고 자신을 확고히 하며, 침착하게 대응하고 조용히 힘을 기르면서 나서지 않되 꼭 할 일만 하자(冷靜觀察 穩住陣脚 沈着應付 韜光養晦 決不當頭 有所作爲)’는 24자 방침이었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덩의 유훈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지위가 의심받기 시작한 지 오래다. 반면 중국은 3조9500억 달러(약 4037조원)나 쌓인 외환보유액 처리를 고심해야 할 정도로 부쩍 성장했다. 지갑이 두둑해진 시진핑이 주변을 둘러보며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질서 창출에 관심을 갖게 된 게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통해 세 가지를 노리고 있다고 알려진다. 첫째는 CICA를 향후 아시아의 안보를 논의하는 주요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역내 안보를 논의하는 기구로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발족시킨 바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축인데, 회원국이 늘면서 안보 비중이 떨어졌다. 이에 SCO의 업그레이드판으로 CICA를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SCO 회원국 모두 CICA 회원국이기도 하다.

 둘째는 아시아 지연(地緣)정치에 있어서의 미국 배제다. 중국은 현재 동중국해에선 일본, 남중국해에서는 베트남 및 필리핀과 분쟁 중이다. 중국이 보기에 이들 문제는 일본이나 베트남, 필리핀과의 갈등이 아니라 이들을 배후에서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국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CICA를 통해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 국가끼리 힘을 모아 해결하자는 주장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CICA의 옵서버 국가에 머물고 있다.

 셋째는 CICA 의장국 신분을 이용해 시진핑의 새로운 아시아 안보관을 적극 홍보한다는 전략이다. 시진핑은 현재의 아시아에 걸맞은 안보질서로 세 가지 안전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는 종합 안전이다. 과거 전통적인 안보관은 군사안전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안전, 사회안전 등 비전통적인 다양한 분야에서의 안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협력 안전이다. 내가 흥하면 남은 망하는 제로섬(zero-sum)적인 계산에서 벗어나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공동 안전이다. 역내 모든 국가의 안보가 똑같이 다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편을 가르는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진핑의 주장을 가만히 보면 그 타깃이 미국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맹을 중심으로 군사력에 치중하는 미국의 안보관에 도전하는 성격이 강하다.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물리력 행사를 만능으로 여기는 냉전 시대의 미국식 안보관으로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역사와 문화 등 온갖 요인이 얽히고설킨 아시아의 안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논리다. 아시아가 맞닥뜨리고 있는 다양한 안전 문제를 아시아 국가끼리 힘을 모아 아시아의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자는 게 중국이 제시하는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질서다.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한데 그런 임무를 달성하는 게 갈수록 쉽지 않은 시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이는 우리 외교가 왜 21세기의 서희를 꼭 배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배경이 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듯, 외교 인재 양성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