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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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설 5백·시 2천여편>

<양과 질>
77년은 70년대에 이르는 우리 나라 신문학사상 가장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한 해였다. 중·단편이 5백편 이상, 시가 2천편 이상 발표되어 작년 보다 각기 30%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인 풍성함에 비해 금년을 대표할만한 뛰어난 작품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것은 문학작품의 수요가 더욱 격증할 78년 이후의 한국 문학에 새로운 경종으로 지적되었다. 문학이 독자에 밀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학이 상품화하면 그 본래의 순수성은 당연히 마멸 될 것이기 때문이다. 2백권 이상 발간된 시집은 아직도 대다수의 독자로부터 외면 당했고 1백권 이상 발간된 소설집 가운데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한 작품의 대부분이 독자의 구미에 맞춰 씌어진 것들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장 많이 팔린 『부초』>

<문제의 작가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윤흥길·조세희씨 등의 활약은 77년 한국문학의 커다란 수확으로 부각되었다. 이들이 연작형태의 이른바 「인물의 순환」기법으로 보여준 작품세계는 삶의 아픔과 진실을 그대로 반영시켜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또 신인 한수산의 갑작스러운 각광도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의 장편 『부초』는 금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문학 단행본이었다. 곡마단의 소외된 삶을 통하여 현실의 밑바닥을 추적한 이 작품은 다른 「베스트셀러」소설과 경향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이게 했다. 김승옥의 작품활동 재개도 시선을 모았다.
60년대의 화려한 감성으로 주목을 끌었던 그는 8년 동안의 침묵 끝에 『서울의 달빛 0장』을 발표, 상금 1백 50만원의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외설」한계 새 과제로>

<외설 시비>
문학의 대중화 현상은 당연한 결과로서 외설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수 많은 신문 연재·잡지 연재소설들이 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았으며 이정환씨의 잡지 연재소설이 타의에 의해 중단됐는가 하면 순수문학작품으로 평단의 절찬을 받았던 한승원씨의 창작집 『앞산도 첩첩하고』가 이례적으로 경고처분을 받기에 이르렀다.
문학이라고 해서 외설까지 자유로울 수 없지만 문학작품 속에서의 외설의 한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는 새로운 숙제로 남기는 사건이었다.

<조용했던 「문단 정치」>

<문단의 움직임>
다른 해에 비하면 금년의 문단 정치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실시된 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서는 조연현 전 이사장의 도움을 받은 서정주씨가 문덕수씨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했으며 「펜·클럽」 회장 선거에서는 모윤숙씨가 조연현씨의 도전을 뿌리치고 쉽게 당선됐다.
그러나 서씨가 이끄는 문인협회는 이사장 선출방법을 고치기 위한 정관 개정문제를 놓고 줄곧 말씨름을 별여 앞으로의 문단이 금년처럼 조용하지만은 않을 것을 암시했다.

<상 20여개…유명무실도>

<상의 홍수>
금년에도 예외 없이 20여 개의 문학상이 시상됐으며 문공부의 『흙의 문학상』, 「문학사상」의 이상문학상 등이 새로 제정되었다. 상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없지만 이 많은 상 가운데 아직도 상당수가 편파적으로, 혹은 개개인의 이해에 따라 운용되고 있음은 우리 나라의 문학상이 문학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발전을 저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를 가져다준다.
또 그 대부분이 고작 20, 30만원의 상금을 시상하고 있어 명칭만의 문학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정신적인 지주 잃어>

<김광섭·안수길씨의 죽음>
금년 한국문학에서 최대의 손실로 꼽히는 것은 시인 김광섭씨와 소설가 안수길씨가 작고한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문단의 양심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다. 일제에의 항거와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민족의식·현실비판의식은 오늘날 문인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하는가 하는데 대한 본보기였다.

<정규웅 기자>

<도움말 주신 분>
김병익(평론) 김현(평론) 박태순(소설) 이청준(소설) 정현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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