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천억불이 순환하는 「대중 자본주의」의 심장-미 「월·스트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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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노동자에 의한 생산 수단의 소유가 사회주의의 정의라면 미국은 벌써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어떤 학자들은 주장한다.
「아메리칸」 전화 전신 회사 (ATT)의 주식을 소유하는 미국인의 숫자가 3백만명, 「제너럴·모터즈」 (GM)의 주식 소유자는 1백30만명이라는 계산을 밀고 나가면 2천5백만명의 미국인들이 1만1천개 회사의 4백5억 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통계에 이른다. 가격으로는 8천억「달러」. 이 나라 성인 여섯 사람 중 한사람이 주주라는 의미다.

<푼돈이 지배하는 ibm>
두말할 것 없이 「월·스트리트」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다. 기업은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고 개인은 남는 돈을 주식에 투자하는 「월」가가 있기 때문에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은 가능했던 것이다. 개인이 주식을 사서 IBM이나 GM이나 ATT의 주주가 될 수 있다는 현상을 두고 미국 경제를 「대중 자본주의」라고 한다. 2천5백만명의 주주는 직접 주식 소유자를 말한다.
연금 기금이나 신탁 예금과 보험 가입을 통한 소위 간접 주식 투자까지 합치면 미국의 주식 소유자 수는 1천만명이 넘는다. 청소원이나 길거리의 거지까지도 미국에서는 주주라는 농담도 의미가 있다.
주식 소유자의 수입이 평균 1년에 1만9천「달러」라는 통계를 보더라도 50년대의 영화에서 흔히 보듯 재산 상속자들만이 주식이나 공채에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다.
76년 중에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 주식은 50억 주나 되고 액수로 치면 1천6백60억 「달러」다.
「뉴욕」 주식 시장에 주식이 상장된 기업은 미국 전체 기업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이 거래되는 기업들은 이 나라 굴지의 기업들을 망라하고 있어 미국 노동력의 5분의 1을 고용하고, 자동차의 1백%, 「알루미늄」과 은, 그리고 「시멘트」의 90%를 생산한다.

<적자 생존의 냉혹한 거리>
결국 월급에서 생활비를 떼고 남은 돈으로 주식을 사는 미국의 시민들은 IBM·GM·「포드」·「엑슨」 같은 큰 기업들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튼튼한 동맥이라도 모세혈관 없이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모세혈관이 동맥의 연장이듯 연금 기금에 매달 불입하는 노동자의 10「달러」, 20「달러」가 「월」가의 증권거래소에서 모여 GNP 1조「달러」를 넘어선 미국 경제를 이룬다.

<초기엔 다방서 공채 거래>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바로 미국의 역사다. 「조지·워싱턴」은 여기서 이 나라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고 「뉴욕」 상공회의소가 영국의 인지 조례 (1765년 영국이 세입 증가를 위하여 미국 식민지에 반포)와 차에 대한 과세에 대해 투쟁을 선언한 것도 이곳이다.
거기서 의회는 권리 헌장을 채택했고 거기서 독립 전쟁의 채무를 갚기 위한 공채 발행이 승인되어 「월·스트리트」의 찻집·사무실·경매장에서 거래됐다. 「월·스트리트」 일대는 「빌딩」의 「정글」지대다. 「정글」에는 천부의 권리라는 것은 없다. 거기는 투쟁 밖에 없다.
점심시간에 「월」가의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면 경쟁하는 기계들 같다. 거기는 바로 생존 경쟁에서 적자만이 생존하는 「찰즈·다윈」의 세계 같이 보인다.
「뉴욕」 주식 시장의 회원도 5백개 중에서 지난 5년간 보다 큰 회사에 병합되는 사태가 속출한 것도 「다윈」의 자연의 세계와 흡사하다.

<투자자수 줄어들어 고민>
그러나 「월」의 고민은 끝없는 생존 경쟁이 아니라 1970년대에 들어서 나타나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열의 후퇴 현상이다.
주식의 직접 소유자는 70년의 3천1백만명에서 76년의 2천5백만명으로 줄었다. 그 대신 늘어나는 것은 연금 기금·보험회사·신탁회사를 통한 간접 투자다.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경제가 최소한 연 성장률 3.6% 정도를 유지하자면 4조6천억「달러」의 새 자본 조달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추세로는 그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스런 전망이다.
과거 5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들은 1년에 평균 60억「달러」의 주식을 팔고 있는 경향을 보였다.
한창 미국 사람들의 주식 소유 열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봉건주의의 붕괴 이후 최대의 기업 소유 형태 변화라고 환영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대중 자본주의」는 만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역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월」가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투자열의 후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월」가의 당면한 최대의 과제일 뿐이다.
글 김영희 특파원
사진 김택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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