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당시 미국처럼 한국 패션인들도 아픔 함께 나눌 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5호 21면

‘너를 기다려 네가 보고 싶어/교문에 매달린 노란 리본/너를 사랑해 목소리 듣고 싶어(중략) 너의 웃음이 너의 체온이/그립고 그립다 노란 리본’.

스타일#: 대중과 소통하는 패션

가사를 새기며, 감정에 쏠려 노래를 듣는 일이 얼마만이었던지. 김창완 밴드의 ‘노란 리본’이란 곡이 딱 그랬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지난달 28일 가수 김창완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공개한 자작곡이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마음을 이렇게 읊조렸다.

추모곡을 헌사한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작곡가 유희열은 10일 방송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엄마의 바다’를, 6일부터 11일까지 콘서트를 연 가수 신승훈은 콘서트 중 ‘아이윌’을 깜짝 공개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의 경우 자신의 대표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헌정하고 해당 곡의 음원 수익금 전액을 유가족에게 기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노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음악으로 성의를 표하듯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위로를 건넸다. 국내 한 건축과 교수는 세월호 구조 활동을 위해 복잡한 선실 설계도면을 이해하기 쉬운 입체모형으로 제작했고, 부산의 한 인쇄업체는 차량에 부착할 노란 리본 스티커를 무료로 배포했다. 전직 청와대 조리장은 밥차를 끌고 진도에 왔다. 이들의 성의는 허점 많은 재난 시스템과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화가 치밀던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줬다.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구나’ 안도와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자성이 함께 생겨났다.

그러다 문득 패션계를 되돌아보게 됐다. 사고가 난 지 근 한 달, 패션 동네는 너무나 조용했고 또 여전히 조용하다. 신제품 론칭 행사, 새로운 이벤트, 각종 화보 촬영이 중단되고 미뤄졌다는 소식만 잇따라 들려왔다.

가만히 상상해 본다. 디자이너가 나서 자원 봉사자들이 입을 노란 리본 티셔츠 하나라도 만들었다면, 슬픔의 표시로 온 국민이 지니고 다닐 노란 손수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차고 넘치던 컬래버레이션 중 하나가 이번 추모 기획으로 진행됐다면 어땠을까. 혹여 상업성의 비난이 염려됐다면 디자이너들이 한데 뭉쳐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이라도 표했다면 어땠을까.

오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디자이너들이 사회 현안에 참여한 허다한 선례가 있어서다. 9·11 테러가 일어난 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는 피해 복구기금 마련을 위해 나섰다. 성조기 프린트를 찍은 티셔츠를 팔아 인기를 끌었다.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그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하얀색 바탕에 ‘아이티에 사랑을(To Haiti With Love)’ ‘아이티를 위한 희망을, 도움을, 치유를(Hope Help Heal Haiti)’이란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사진)를 제작했다. 랠프 로런,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도나 카란 등 미국 대표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알렉산더 매퀸, 비비안웨스트우드 등이 드레스를 기부하며 자선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껏 디자이너들을 만나면서 수없이 들었던 얘기가 있다. 국내 패션 시장이 수입 고가 브랜드와 글로벌 SPA로 양분돼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홍보를 대대적으로 벌일 처지도 못 되고, 딱히 대중과 교감할 기회도 없다고 했다. 그런 말들에 나는 꽤나 공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디자이너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선의를 보여 줄 시점임에도 왜 손을 놓고 있나 싶어서다. 260여 명이 소속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라는 단체까지 만든 마당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직도 ‘패션은 사치’라고 폄훼하는 이들이 많다. 과시와 허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 몸담는 이들이 능력과 재능을, 무엇보다 온정을 대중과 나눈다면 그 편견은 바뀌리라 믿는다. 더구나 이미 ‘착한 소비’에 지갑을 열 이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전환점을 찾는 건 디자이너의 몫일 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