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청초의 석도편 산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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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명말∼청초의 야인 작가 석도와 팔대산인은 중국 회화 사상 최대의 혁명 작가로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석도는 산수에서, 팔대산인은 화조에서 각기 그들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였다. 이 두 작가는 다 명종대의 유민 작가로서 한족(명)이 만주족(청)에 의해 망하니 심산으로 들어가 오직 서화로써 낙을 삼았다.
그 점은 「아마추어」로서 일관했지만 그들의 예술은 천추 만대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석도(주약극)가 그의 산수화에서 보여준 예술은 특히 구도에서 1천여년간 전통된 전형적 중국 산수화의 양식을 버리고 완전히 전무한 혁신적 구도로 일관하였으니 이점 우리나라의 겸재(정선)의 예술과 공통된 점이 있다. 또 석도는 난죽과 전각에도 능통했는데 이 두가지 예술은 우리나라의 추사 예술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추사에서 석파를 거쳐 근대 명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후 이 예술(산수화의 구도)이 중단되고 만 것은 예술의 진의를 저버리고 부귀영화와 출세만을 위한 저속한 후배 작가들에 인하여 그러하다.
근대 중국과 한국의 예술이 발전하지 못한 원인도 그 한가지가 여기 있다고 보겠다. 【청강 김영기<동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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