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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를 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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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손자병법의 36계 가운데 원교근공(遠交近攻)이란 계책이 있다.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나라를 쳐라. 최근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일어난 두 가지 일을 보며 이 말을 떠올렸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천리가 멀다 하지 않고 아프리카 대륙을 누볐다. 그는 300억 달러 차관이란 두둑한 선물 보따리를 안겼고, 고속철 사업권 등을 따냈다. “중국이 원조를 구실로 아프리카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등의 시기 어린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중국을 필요로 하고 환대하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이건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일이 아니다.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지 않고 있던 시절부터 베이징에 드나든 일본인 전문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960년대 천안문 광장에 가보면 외국인 10명 중 9명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유학생 기숙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중국이 1970년대 유엔에 복귀하고 국제무대에서 힘을 늘려나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엔에선 초강대국 미국이나 아프리카 신생국가나 모두 한 표다. 리 총리의 아프리카 순방은 63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 이래 중국 수뇌부의 89번째 방문이었다. 리 총리는 부인 청훙과 함께 가는 곳마다 미소 외교를 펼쳤다.

 눈을 아시아로 돌려보면 여긴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망망대해에 중국이 세운 시추공 때문에 선체 들이받기와 물대포 공방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전투기와 군함까지 남중국해로 속속 집결한 걸 보면 물대포가 진짜 대포로 바뀌지 않는다는 장담도 못할 지경이다.

 마오쩌둥 시절까지만 해도 중국은 대륙국가였다. 마오는 미국이나 소련과의 전쟁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서부 내륙에 군사기지를 구축했다. 적을 내륙 깊숙이 유인한 다음 ‘인민의 바다’에 빠뜨려 보급로를 끊고 지구전으로 승부를 본다는 ‘인민전술’을 그는 신봉했다. 해양으로 눈을 돌린 건 덩샤오핑이었다. 항공모함까지 보유하게 된 해군력 현대화도 그가 씨를 뿌린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1만8000㎞의 해안선에 육지뿐 아니라 해양영토 역시 방대한 나라다. 당·송·명대의 기록을 찾아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며 남중국해의 모든 섬이 중국 영토라고 규정한 영해법을 선포한 건 1992년이다. 그러니 남중국해 분쟁 역시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날 선 말을 쏟아내며 국제사회의 우려에 반박하는 중국 관리들의 모습에선 리 총리가 아프리카에서 보여준 미소를 볼 수 없다. 그런데 원교근공이란 말을 생각하면 강 건너 불구경 할 일도 아니다. 거리로만 따지면야 땅과 바다 모두 맞닿아 있는 우리야말로 중국의 지근(至近)이 아닌가. 36가지 책략을 유전자에 새긴 손자의 후예들과 이웃해 살아가자면 그들을 능가하는 지혜와 전략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 손자병법을 다시 쓰자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원교근교부전즉리(遠交近交不戰則利) 먼 나라 이웃 나라 두루 사귀고 아무와도 싸우지 않으면 그게 바로 남는 장사니라.”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