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타워 대신 책임 나누는 수평적 위기관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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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는 박재현 유엔 현장보안조정관이 15일 서울 전쟁기념관 유엔참전실 앞에서 국가 위기관리 대응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축축한 사막의 비가 내리는 지난 4월. 아프가니스탄 동부 도시 가르데즈에서 지난해 9월부터 유엔 현장보안조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현(36)씨는 인터넷으로 안타까운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해야 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위기관리공학 박사과정을 거쳐 2010년 유엔 공무원이 된 그는 케냐와 아프가니스탄에서 5년째 현지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케냐로 날아오면 경호 업무를 맡기도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부터 약 100㎞ 떨어진 도시에 머물고 있는 그는 유엔 직원 80여 명에게 생길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이 담벼락을 들이박을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누구보다 위기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박씨는 세월호 소식을 듣고 ‘국가 통합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국내 신문에 기고했다. 지난 13일 휴가차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위기 대처법에 대해 물었다.

 - 세월호 침몰 후 위기 대응책을 어떻게 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사를 봤는데 해경 간부가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는 발언이 보도로 나왔다.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몰 시작 후에도 47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해경과 해군, 지자체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동안 위기 상황에 대한 훈련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두세 달에 한 번 긴급 대응 상황 실전훈련을 주도한다. 예고 없이 비상 훈련 상황이 선포되면, 테러범을 사살하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훈련을 진행한다. 그는 “의료팀이 보안팀 상의도 없이 바로 폭발 현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동선을 조정한다”며 “실전과 같은 훈련이 계속돼야 의사소통도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고 후 시신 수습 과정에서 민간 잠수부와 해경 간 갈등도 노출됐다.

 “미국에서 자원봉사 소방대원이 70% 차지할 정도로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현지 지리 특성을 제일 잘 안다. 민간 잠수원이 사망한 일도 그동안 민·관 합동 훈련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준다. 부상 위험 때문에 민간 참여가 껄끄러울 수 있겠지만 자주 훈련할수록 보상 절차와 같은 행정 문제도 해결된다.”

 - 국가적 재난 안전시스템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기 상황에서는 ‘컨트롤 타워’ ‘사령탑’과 같은 수직적인 구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행정 관료 중심의 조직 책임자는 위기 상황 때 전파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신 평시에 해당 지역 재난·위기 관리를 맡은 전문가를 중심으로 총괄조직이 빠르게 구성돼야 한다. ‘지휘’라는 수직적 개념보다 ‘총괄’과 ‘책임’이라는 수평적 통합 위기 관리 개념으로 움직여야 한다. 수직적 구조는 조직 간 책임을 미루기 때문에 갈등만 유발할 뿐이다.”

 종군기자가 꿈이었던 박씨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을 밟던 중 국제 위기 관리 체계에 관심을 갖고 유엔 안전보안국 소속 직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통일 후 한반도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민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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