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국회의원서 낙농업 투신한 강성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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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도 안성에 있는 성원목장을 찾았을 때 안개가 먼저 와 자리잡고 있었다.

안개속에 파묻힌 목장은 세속과 단절된 듯했다. 심지어 목장 입구에는 세상과의 경계선인양 석회석 마저 뿌려져 있었다. 실상은 구제역 병균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17만평 규모의 목장 한가운데에 있는 2층 양옥집에 들어서자 목장주 강성원(康誠元.75) 씨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5.16 군사 쿠데타에 참여하고 공화당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70대 중반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예전에 정치할 때는 왜 그리도 아픈 곳이 많았는지. 지금은 공기 좋은 곳에서 욕심내지 않고 사니 건강할 수밖에요."

康씨가 안성에 내려온 것은 1972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유신(維新)개헌에 반발한 직후다. 정치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고자 1년 내내 바쁘게 일해야 하는 목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함께 일하자는 朴대통령의 제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유신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뿌리쳤다.

"朴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신은 5.16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28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康씨는 임시정부에 자금을 모아 전달하는 일을 하느라 옥고까지 치렀던 아버지를 따라 해방 직후 월남했다. 이후 한글학회가 설립한 세종국어교사양성소에서 2년 가까이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직전에 6.25 전쟁이 터져 육군종합학교에 들어갔다.

61년 그가 5.16에 참여하게 된 것은 60년 그가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서 기획관(소령)으로 일할 때 같은 부서의 기획과장이었던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총재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JP와 함께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 또 중앙정보부 내에 정책연구실을 만들어 각계 전문가들과 공화당 출범을 위한 기본 골격을 짜는 등 60년대 한국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런 그에게 낙농업은 낯선 분야였다. 낮에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밤엔 벽돌로 만든 임시거처에서 추위를 견뎌야 했다.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간 동안 젖을 짜는 일도 고역이었다. 목장을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돼 젖소 20마리 중 8마리가 죽었다. 현재 키우는 젖소는 7백마리다.

"중도에 포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때마다 반드시 내 힘으로 목장을 일구겠다는 각오로 버텼습니다. "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성원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됐던 1994년. 성원목장에서 생산하는 강성원우유는 요즘 수도권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4만여 가정에 배달된다.

그는 '우유 부강국가론'을 제시했다. "우유를 많이 먹는 민족이 과거 세계사를 지배했어요. 로마.몽골.바이킹.미국 등. 어린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투자는 좋은 우유를 먹이는 겁니다."

글=하재식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 프로필

▶ 1951년 1월 소위 임관 (육군종합학교 17기)

▶ 61년 5.16 참여, 소령 예편

▶ 민주공화당 조직부장.사무차장

▶ 제8대 국회의원(전국구)

▶ 73년 성원목장 창업

▶ 83~89년:서울우유협동조합장

▶ 92~95년:한국낙농육우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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