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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우울한 '스승의 날' 맞는 선생님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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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단원고 고 최혜정 교사의 봉안단에 14일 누군가가 달아놓은 카네이션 꽃. [뉴스1]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선생님도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었다는 생각에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불신의 대상이 된 것 같아 마음도 무겁고요.”

 6년째 초등학교 교단을 지켜온 김모(32) 교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사가 된 후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제자들이 건네준 감사편지를 자랑스럽게 지인들에게 보여주곤 했지만, 올해는 그만두기로 했다. 1982년 정부기념일로 지정돼 32년째 이어진 스승의 날 기념식도 올핸 열리지 않는다.

 많은 교사들이 김 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맞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교사 3243명을 조사했더니 47%가 “참사 이후 우울증이나 답답함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교총 게시판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교사들이 ‘왜 살아 돌아왔느냐’는 항의에 시달린다더라. 평소에도 스승 대접 못 받는데 너무 큰 책임까지 지웠다. 교사로 사는 게 힘들다”는 글이 올라왔다.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에서 교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평소 교실에서 안전교육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제자가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어물쩍 넘어갔던 교사가 많다. ‘안전 불감증’을 반성하고, 학생의 미래와 안전을 책임지는 교사로서의 소명을 잊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인 것도 맞다.

 하지만 교사에 대한 기대와 신뢰마저 스스로 저버려선 안 된다. 교사가 무너지면 학생들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끝까지 남아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일일이 챙겨준 고(故) 남윤철 교사, 제자들에게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란 메시지를 남기고 학생들을 돕다 숨진 고 최혜정 교사, 한 명의 제자라도 더 구하겠다며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한 고 박육근 교사…. 이들은 참사 와중에 참스승이 무엇이고, 교사가 왜 존경받아야 하는 직업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학부모 이모(32)씨는 “자식 같은 제자들과 함께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선생님들이 얼마나 참담했겠느냐”며 “끝까지 곁에 있어준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들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승의 날은 58년 논산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을 위문하고 퇴직 은사를 찾아뵙던 데서 시작됐다. 5월 26일이었다가 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다. 스승을 세종대왕처럼 존경하고, 또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교사는 제자에게 ‘세종대왕’이다. 못내 미안하다면, 다시는 그런 마음 들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열정을 쏟겠다고 스스로를 다잡는 스승의 날로 삼았으면 한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