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임금」논의에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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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저임금을 성장과 수출의 실질적인 모태로 삼아오던 기업계에서 요즈음 고임금-고생산성론이 제기됨으로써 이른바 임금관에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한 문제의 제기가 어떤 개별기업가의 소견이 아니라 경제단체장의 이름으로 야기되었다는데서 사회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이 단순노동>
한국경제의 발전단계는 아직도 개발초기에 있으며 경제각부문의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노정되어 모든 면에서 국제열위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력의 수급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단순노동의 수준에 있고 방대한 잠재실업 군이 생계비 조달을 위해서 일시적 취업상태에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문화되어있는 최저임금제를 실시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노동력수급의 저생산성 취용 상태와 누진되는 「인플레」때문이었다.
이러한 여건 위에서 고임금-고생산성이라는, 선진경제 구조위의 원칙론이 제기되었다는 것은 국민 경제적인 관련을 홀시한 개별기업가적인 단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념의 착도가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경영자의 임금관이 곧 임금결정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한국적인 발상이다.
임금은 경영자의 시혜가 아닌 것이며 생산요소의 수급관계의 하나로서 성립되는 가격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금결정은 임금격차· 생계비·경쟁조건·노동력수급·지불능력·개별생산성·작업내용·단체교섭력 등과 관련되는 것이다.

<경영자 시혜 아니다>
이들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현실임금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산업간으로 보거나 직종간으로 보아서, 그리고 기업규모에 따라서 선도하는 부분과 뒤따라가는 부분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때문에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임금정책은 선도부문과 후인부문을 어떻게 조정해 나감으로써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그리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확보해 나가느냐 하는 고차원의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성질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지금 업계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임금논의는 다각도의 기본적인 검토가 불가피한 것이다.
우선 특정부문·특정직종의 노동력공급 부족을 보편적인 노동력 부족이라는 고용상태의 지속으로 확대 해석하는 오류는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오늘날 고급관리직과 건설·기계·장비기술자 등의 부족으로 파생되는 부분적인 애로는 장단기 수급대책이라는 구조정책으로 해결되어야 할 특수상황이지, 그것이 보편적인 고고용 상태로 해석되어 일반적인 임금정책으로 둔갑 될 성질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다음으로 애로부문의 고임금이 여타부문에 파급되는 효과가 국민 경제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할 것이냐에 대해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애로부문이 임금선도부문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후속부문에 파급되지 않고 임금의 이중구조화를 강화시키는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불가피하다.
아무리 고급 노동 층의 임금이 상승한다 해도 그것이 단순노동 층의 고급노동자로의 전환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민경제라는 차원에서 볼 때 소위 절대 다수 층이라 할 저임금부문과 방대한 잠재 실업군에 대한 노동정책상의 과제를 구명하는 것이 당면한 임금문제의 핵심이지, 대기업 ·선진기업의 관리직 ·전문기술직부족 문제가 임금문제의 핵심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임금선진「그룹」이라 할 종합상사, 건설회사가 정상적인 고생산성을 시현하고 있는 기업인가에도 적지 않은 의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국민부담으로 조달되는 저리자금을 거의 무제한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열기업에 대한 고리대나 또는 계열기업의 저임금을 토대로 해서 고임금을 구가하는 특수층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이 나라의 수출과 성장을 지탱해 주고있는 저임금부문의 임금조건을 개선하는 구체적 방법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것이 이 시점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월 급여액이 5만원 수준에 있는 근로자들이 전체의 80%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재무구조· 생산성 ·지불능력 ·대외경쟁력을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보편적인 대금개선을 위한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조건의 충족 없이 애로부문의 임금선도가 후속부문의 임금압력을 가중시킬 때 그 파생하는 부작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깊이 고처되어야 할 것이다.

<5만원수준이 80%>
부작용의 하나는 선도부문의 임금인상이 후속부문에 파급되지 않을 경우 저임금에 대한 불만의 노출에서 오는 근로의욕의 저하와 그에 따른 사회적 마찰이 깊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선도부문의 임금인상이 후속부문의 제능력 개선 없이 후속부문에 파급될 때 야기되는 대외경쟁력의 약화는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이 성장과 국제수지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국민 경제적인 차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국민경제의 발전단계와 산업구조상으로 본 현실적인 대외경쟁조건, 임금선도 부문과 후속부문 간의 관계와, 그것이 미칠 사회경제적인 압력 등을 깊이 고려해서 노동력 정책의 구조적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임금문제가 다뤄져야 할 것이지, 결코 특수부문의 애로를 기준으로 임금문제를 다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규동<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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