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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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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의 정동은 아직도 이국적인 정취가 남아 있는, 아마 유일한 곳이다. 지금은 대로가 가로질러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사뭇 색다른 건물들의 옛 빛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덕수궁의 석조건물하며, 「고디」식 벽돌집의 정동교회, 탑신만 남은 「르네상스」식 「러시아」공사관 · 미국대사관저만 해도 비록 한식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이국적인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한때는 이 정동에 장로교의 새문안교회와 감리교의 정동교회가 나란히 쌍벽을 이루고 있어, 기독교의 새 물결이 마치 온 천지에 범람하는 듯 했다.
정동교회가 설립된 것은 1887년10월9일. 올해로 꼭 90년 전의 일이다. 벌써 2년 전부터 배재학당을 운영하고 있던 「H·G·아펜셀러」는 미북 장로파의 「언더우드」가 새문안교회를 새워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자극을 받아 이 교회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아펜셸러」는 비폭력을 내세우는 선교사였지만, 학생들에게는 끊임없이 자립정신을 고취시키며 은근히 정치적인 각성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외국인으로서의 치외법권이라는 복권을 누리고 있었다.
정동교회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 무렵 우국지사들의 피신처가 되었다. 이승만 박사가 정동교회와 인연이 맺어진 것은 배재와의 연분도 연분이지만, 「아팬셀러」에 대한 호의가 더 큰 작용을 했었다.
적어도 이 교회 안에서는 애국정객이나 우국 청년들이 정치적인 회포를 마음놓고 풀 수 있었다. 일제의 무서운 탄압아래서도 정동교회의 선도들은 어깨를 펴고 꿋꿋한 자세로 예배를 보았다.
이 박사는 건국 후에도 일요일이면 잊지 않고 이 교회를 찾았다. 이박사의 추도예배가 지금도 해마다 이 교회에서 베풀어지는 것은 이런 옛날의 연분 때문이다.
배재의 교사였던 서재필 윤치호 등도 정동교회와는 인연이 깊다. 그들은 신앙을 통한 조국의 광복에 골똘해 있었다.
정동교회가 주일예배를 공식으로 시작한 것은 1887년10월9일이지만, 그 교회가 준공된 것은 1888년10월25일이다. 그때만 해도 이 교회는 배재학당의 종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조를 알려주는 종소리가 교회와 학당에서 함께 울린 것은 인상적인 일이다.
이 교회건물은 최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오는 10월9일은 창립90주년을 맞는 기념일. 「살아있는 근세사」의 1장을 보는 감회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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