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장과 입시와의 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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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궁극적으로 국민체위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체력장제도가 도리어 국민의 목숨까지 앗아갈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라면, 이보다도 더한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신문지상에 보도된 서울시내 Y여중에서의 참사는 그 희생자가 한꺼번에 6명(그중 1명 사망)이나 되었다는 사실 외에도, 사고를 낸 Y여중이 체육교육 관리 면에서 평소부터 정평 있는 모범적인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번과 같은 큰 사고를 빚고 말았다는 점에서 체력장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촉구하는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이 체력장제도가 설정하고 있는 제 기준에 대해서는 당초부터 논란이 집중됐었다. 남자중학생에 대한 1천m의 3분39초와 1백m의 12초7초 내 달리기, 그리고 여자중학생에 대한 8백m의 4분13초 내 및 1백m의 15초1내 달리기 등의 기준이 우리 나라 일반중학생의 체력으로써는 무리한 것이라 함은 다른 것은 고사하고, 72년 이 제도의 창설 이후 전국각지에서 속출한 사고들의 누계가 여실하게 반증하고 있다.
물론 체육전문가들의 반론이야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기준이 세계각국의 동년배 학생들의 평균체력에 비교해서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항변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나라 남녀중학생과 그들을 같은 평면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식생활부터가 우리하고는 전혀 다를 뿐 아니라 또 이 나라에서처럼 과중한 과외공부의 중압에 시달려 하루 치기 체력장 검사에 응하는 일이란 처음부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설사 같은 1천m·8백m 오래달리기를 하는 경우에도, 그 이전에 육상·체조·구기 등으로 단련된 보다 유연한 체격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문제가 발생한 Y여중의 경우 학교당국은 연습 일을 계절적으로 가장 쾌적한 날로 잡았고, 8백m달리기를 실시하기 직전 수검자 전원에게 충분한 준비운동을 실시케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도교사는 몇몇 생리중의 학생, 평소부터 지병이 있는 학생들을 제외시키는 데까지 세심한 고려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사고를 빚고 말았다는 것이니, 이는 현재의 체력장제도가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할 필요성을 지녔음을 웅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보마 본질적인 문제는 이 같은 체력장제도를 상급학교의 입시와 관련하여 꼭 존속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지·덕·체를 함께 겸비한 인격자를 양성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기본목적일진대 학교교육에서 체육을 중시하고 어떤 특별한 유인을 제공하여 누구나 좀더 튼튼한 체력을 갖도록 권장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런 한에 있어 국가가 체력장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일반적으로 국민체육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제도를 상급학교의 입시와 직결시켜 수백만 어린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강박관념을 심어 주는 것을 어찌 교육적인 처사라 할 수 있겠는가.
고등학교나 대학의 입학자격과 체력장 사이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교육의 기화균등과 그 가치를 인정한 우리나라 교육법체계의 기본정신일뿐더러, 낮은 체력장 점수 때문에 상급학교에의 진학이 거부된다는 것은 교육 기본질서에 대한 위반이다.
뿐만 아니라, 체력장제도를 입시와 직접 결부시킴으로써 조성된 중-고등 학교에서의 변태적 체육교과과정 운영은 국민체위의 향상과는 오히려 역항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음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체력장제도가 입시에 직결되고 있는 한, 아무리 법령으로 된 체육교과과정이 유연성 있는 기초체력함양을 요구한다 해도 결국 달리기. 철봉. 멀리뛰기. 던지기 등 극히 특수적인 8개 종목 이외의 체능향상에는 주력할 리가 없다는 것은 근간의 실태가 여실히 입증하고 있지 아니한가.
체력장 제도의 존폐문제를 이런 본질적인 차원에서 진지하게 재검토할 때가 왔다고 우리는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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