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조직에 관한 법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유통 부문의 합리화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유통 부문은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는 교량적 역할을 통해 확대 재생산의 촉진과 물가 안정에 절대적인 기능을 한다. 때문에 유통 부문의 합리화는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통 부문의 전근대성은 물가 구조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유통 부문의 전근대성과 비합리로 인해 가격이 격변하는 사례가 많으며 최근 들어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농·수산물 가격의 폭등은 유통 「마진」의 과다와 전근대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엔 1천5백57개의 시장·29개의 백화점·1백 개의「슈퍼마키트」·52개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있다.
우리나라 시장은 공통적으로 자기 자본의 취약·규모의 영세성·저생산성 등으로 제대로의 시장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이나 산업 구조면에서도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지만 이는 경제발전 단계에서의·필연적인 결과라기 보다 잠재 실업군이 유통 부문에 몰려 있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유통 부문의 취약성과 저생산성은 경제발전과 물가 안정의 큰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물가 문제의 가장 큰 취약점이 유통 부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늘어나는 시장·백화점·상가·「슈퍼마키트」 등이 물자의 원활한 수송·보관·배급 기능을 게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 보장이나 가격 균일화·소비자 보호라는 점은 더욱 뒷전에 밀리고 있다.
광의의 「시장」이 양적인 팽창에 비례한 질적인 고도화가 안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우선 법적인 보강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인 것 같다.
75년에도 「도소매업 근대화 촉진법」을 만들었다가 실현을 못 보았는데 이번 이를 손질 「시장 및 상업 조직에 관한 법안」을 성안하여 오는 정기국회에 제안키로 한 것이다. 현 시장 법은 61년 8월에 제정된 것으로서 전문12조의 아주 간략한 것이다. 지금부터 16년 전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현 시장 여건과는 맞지 않는 점도 많고 또 유통 근대화를 뒷받침하기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새로 성안된 「시장 및 상업 조직에 관한 법」은 유통시장 육성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모든 시장의 도소매 구분, 상점가의 입지 지정, 시장·백화점의 허가제, 정기 경영진단과 5년마다의 허가 갱신, 물량 공급을 위한 생산자 협조 의무화, 시설의 신설, 개수 명령권 등 유통 부문에 있어서 정부가 거의 무소 불통의 통제와 간섭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고질화된 유통 부문의 근대화를 위해 상당히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가 왜 이렇게 생성·비대했으며 각 부문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관행·전통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성되어 온 역사적 배경에 상관없이 유통혁명이라는 이상론에 치우쳐 법만으로 밀어젖히면 오히려 부작용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유통 부문에 생계의 근거를 두고 있는 수많은 영세 상인들을 단지 유통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추방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 영세 상인들은 실제 가계와 접점이 되는 말단 유통 조직으로서 그 나름의 기능을 실제 다하고 있으며 또 이들의 생계 문제도 사회적으로 중대한 일이다. 오히려 협의와 조정을 바탕으로 자금·세금·행정 면에서 점진적인 유통 근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 소망스럽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새 시장 법에 포함되어 있는 강력한 정부 통제 권한은 다소 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어느 부문이든 결국 비능율과 왜곡을 가져오기 쉽다.
유통 개혁을 내세운 정부 통제의 강화로 시장 기능이 위축된다면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격」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앞으로의 심의 과정에서 보다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