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양심 … 꼭 지켜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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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나빠진 건 고이즈미·아베 등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한 탓입니다.”

 최고 권력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 ‘그림자 총리’로 불리던 일본 정계의 거물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89) 전 관방장관. 양국 간 분쟁 배경을 묻자 거침없이 일본 내 우경화 정치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양심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나카 전 장관은 동아시아 평화와 재일교포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이 인정돼 9일 숭실대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학위 수여는 일본에서 재일교포 노인들을 돌보는 봉사단체 ‘마음의 가족’(이사장 윤기) 주선으로 이뤄졌다.

“총리들 신사 참배로 한·일 악화”

지난 9일 숭실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방한한 노나카 히로무 전 관방장관은 “고노·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양심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야스쿠니는 메이지시대 때 애국적인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하나 똑같이 애국심에서 싸웠지만 서남전쟁 등 일본 내전에서 정부군과 대결하다 전사한 경우는 모시지 않았다. 모순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또 당초 이곳에는 A급 전범이 없었다. 그런데 1978년 마쓰다이라 나가요시(松平永芳)란 궁사(宮司·신사 책임자)가 A급 전범들의 유해를 몰래 옮겨와 합사했다. 1년 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당시 쇼와 천황은 발길을 끊었다. 그 뒤 후임 천황 모두 가지 않는다. 전쟁 희생자들과 전범을 함께 모시는 건 있을 수 없다. 경내 전쟁기념관에선 패전 아닌 승전 관련 자료만 전시한다. 큰 문제다.”

전범 합사 뒤 일왕들 참배 안 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고노 담화를 검증하려 한다.

 “담화가 나오던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내용을 미리 알려줬다. 그걸 본 나는 모두 맞는 내용이라 했다. 고노 담화는 바뀌어선 안 된다. 수치를 무릅쓰고 고백을 한 이들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고노 담화 발표 후 일본에선 사죄의 뜻으로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도 지원했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알까봐 성금을 받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삶이 얼마 남지 않자 새롭게 고백하는 피해자가 나온다. 이런 주장들은 인정해야 한다.”

 자민당 간사장도 역임한 노나카 전 장관은 일본 내에선 천민으로 통하는 부라쿠민(部落民) 출신이다. 그래서 그가 자민당 대표로 거론되자 정적인 아소 다로(麻生 太郞) 전 총리가 사석에서 “어떻게 부라쿠민 출신이 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공개 석상에서 노나카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오사카에 있던 집 근처에 광산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혹독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곤 이들에게 동정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또 어렸을 적 본인과 여동생을 한인 여성이 돌봐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날도 세월호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무라야마 담화에 담긴 역사 인식을 아베가 바꾸려 한다.

 “이 담화는 일본의 양심이다.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 이후 아베 총리도 무시하려 한다. 여기에 극력 반대했음에도 이런 움직임이 계속돼 ‘이렇게 일본이 가면 안 된다’고 밝힌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한·일 관계와 관련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은.

 “94년 국가공안위원장 시절 야당 정치인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비행기를 갈아 탈 때마다 일본 경찰의 집요한 질문 공세로 곤란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에서 한국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김대중 납치 사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찰 간부를 불러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그 후 관방장관이었던 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공동성명 건으로 방한해 김 대통령을 만났더니 ‘그때 크게 신세 졌다’고 하더라.”

세월호 기리는 노란 리본 달아

 -중·일 간 현안인 센카구열도 분쟁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일·중 국교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해 72년 일본 대표단과 중국에 갔었다. 그곳에서 이야기가 잘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이제 다 끝났죠’ 했더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아니다. 센가쿠가 남았다’고 했다. 그러자 저우 총리가 ‘그 이야기하면 길어지니 나중에 하자’ 해서 넘어간 이슈다. 현 일본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론 양 정부가 공동출자한 특별재단을 만들어 주변 지하자원을 함께 개발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글=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노나카 히로무=일본에서 오랜 세월 동안 차별당해 온 천민 계급 부라쿠민 출신 정치인. 교토부 소노베정(園部町) 촌장, 교토부 부지사, 중의원 의원, 국가공안위원장, 관방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을 지냈다. 2001, 2003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에게 연달아 패해 2003년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2011년 자민당에서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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