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에겐 위기를 극복하는 DNA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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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월호 사고 이후 한 달여 가까이 우리 사회는 자학과 패배주의에 젖어있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가 있었으나 이번처럼 전 사회가 무기력증에 빠지고 집단 패닉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적은 없다. 우리는 원래 위기에 발목 잡혀본 적이 없었다. 국가가 부도났던 1997년 외환위기에도 전 국민이 금 모으기에 나섰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했던 가혹한 매뉴얼을 이행해 냈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방향을 찾고 실천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참변을 당한 이번 세월호 사고에 선 극복의 의지마저 확 꺾인 모습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고 어쩌면 묵인해온 폐단들, 대충대충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불감증 그리고 낙하산 인사와 청탁 속에 뿌리내린 ‘풀뿌리 관피아’ 문화 등이 우리 아이들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당혹과 자책이 너무 커서다. 인간 세상에 자식보다 귀한 존재가 없는데 어른들의 탐욕 때문에 자식들이 해를 당했으니 어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이제 우린 깊은 슬픔과 좌절에서 빠져나오는 용기를 낼 때가 됐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매정한 논리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자라 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어서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내야 한다. 지금 일부 희생자 가족들의 자살 시도가 이어지고, 안산 임시분향소 자원봉사자가 자살했다. 슬픔과 분노가 허탈감으로 바뀔 무렵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앞에 자살로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여서는 안 된다. 살아남아 우리가 묵인했던 폐단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사소한 이익을 포기하고 ‘안전’ 사회에 투자하고, 탐욕스러운 관피아 문화를 척결하기 위해 감시하고 요구하는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또 이젠 삶이 힘겨운 이웃들을 돌봐야 한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는 멈춰 있었다. 시민 스스로 경제활동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서민의 삶은 황폐화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서민형 자영업자에게 집중되면서 내수 경기가 더욱 악화되는 ‘내수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도 나왔다. 정부가 7조8000억원의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세금 납기를 연장하기로 했지만 이런 대책이 경기를 살릴 순 없다. 소비심리가 회복돼야 서민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 경제가 살아야 그나마 사회 활력도 살아날 수 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이번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 힘을 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할 일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위기든 극복해왔다. 이번 위기도 극복해내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