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잠수함과 충돌? … 유언비어·정치선동 판친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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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9일 세월호 침몰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학교 실험실에서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비슷한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 배에 실린 컨테이너와 차량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것이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잠수함과의 충돌? 사고 당시 군사작전이라고 어선 접근 금지했다는 얘기며, CNN이 먼저 잠수함 충돌 얘기한 거 잠수함의 전원 구조가 세월호 전원 구조로 오보됐다는 얘기며, 앞뒤가 넘(너무) 맞다’.

 9일 현재 트위터상에서 떠도는 글이다. 한·미 연합훈련 때 해상 사격훈련이 있었고 그 와중에 미국 잠수함과 세월호가 충돌해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일엔 ‘45도로 침몰된 세월호 옆 네모난 물체는 잠수함과 똑같네?’란 글도 트위터상에 퍼졌다. 하지만 이 글들은 모두 허위다.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해역에서 지난달 15일 사격훈련이 있었지만 사고 당일인 16일엔 없었다. 사고 해역은 잠수함이 활동하기엔 수심이 얕은 곳이다.

 이런 허위 사실이 어떻게 인터넷상에 버젓이 나도는 것일까.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글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냈다. 범인은 보험설계사 신모(50)씨였다. 신씨는 지난달 19일 직장에서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접속했다. 그는 오전 8시16분쯤 ‘한·미 해군 합동 군사 훈련 중’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세월호가 한·미 연합 해상사격 훈련 때문에 항로를 바꿔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글에는 같은 달 15~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인근 해역의 항행경보 상황판 지도 사진과 사격 훈련 구역이 표시돼 있었다. “서해안에서 기동 중인 미국 핵잠수함”이란 설명과 함께 잠수함 사진도 덧붙였다.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월호 항로 변경이 한·미 훈련 때문이란 의심을 갖던 중 충동적으로 글을 올렸다”며 “과거에도 상습적으로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진술했다.

 신씨가 충동적으로 올린 글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아고라에서만 조회수 1만여 회를 기록했다. 지난달 27일 스스로 글을 삭제했지만 해당 글은 트위터 등 SNS를 타고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확산됐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도 이 소식이 퍼졌다. 일부 가족은 “세월호가 훈련하던 미군 잠수함과 부딪혀 가라앉았다. 당시 쇠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는데 맞느냐”며 정부 관계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유언비어와 ‘막말’이 온라인상에서 난무하고 있다. 일부 세력은 이를 정치적 주장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달 29일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4·19 혁명과 6·10 민주항쟁의 시발점이 된 김주열·박종철 열사에 비유하며 ‘학생들의 죽음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의한 타살’이란 내용의 추모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9일엔 “10일 예정된 안산시민사회단체의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에 참여해달라”는 독려 글도 공지사항에 올렸다. 세월호 희생자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막말 논란이 일자 유가족들은 행동에 나서 사임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안산 촛불집회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정미홍(56·여) 전 아나운서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여한 청소년이 일당 6만원에 동원됐고 여기에 ‘배후’가 있을 것”이란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에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 참석한 여성이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한다”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영상 속 여성은 실제 실종자 가족이었다. 권 의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적발된 세월호 관련 유언비어와 막말은 226건에 이른다. 경찰은 지난달 17일부터 지난 6일까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악성 댓글과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39명을 검거(2명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의 범행 동기는 ‘호기심·장난’ ‘주목받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자초한 면이 적지 않다. 사고 초기 해경과 안전행정부는 구조 상황을 정확히 알리지 못했다. 지난 7일까지 탑승자·구조자 숫자만 해도 6차례나 번복했다. 전북대 설동훈(사회학) 교수는 “정보에 대한 욕구는 큰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다 보니 이 틈을 유언비어가 파고든 것”이라며 “국민 관심이 큰 대형 참사일수록 진행 중인 구조 상황을 최대한 공개해야 유언비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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