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원고수집「붐」…생존문인 것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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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미에서는 작고문인들의 육필원고가 매우 많은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영국 어느 은행에서 1백56년만에 발견된 「바이런」과 「셸리」의 시 초고는 그 가치가 4억원으로 홋가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까지 이미 발표된 작품의 원고들은 거의 모두가 폐기돼왔는데 최근 문인들 사이에서 문인들의 원고수집이 「붐」을 이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원고의 첫장 수집에 불과한 것이지만 시인 김구용 박재삼 성춘복 김후란씨와 문학평론가 김윤식씨 등 중견문인들이 오래 전부터 모아온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그것이 단순한 수집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인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 외에도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 등 신문학 초창기의 문인들이 원고를 수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김동리 조연현 황순원씨 등 중진문인들이 소극적으로 수집해왔으나 그같은 수집운동이 20대 30대 신인 소장문인에게까지 폭넓게 파급된 것은 처음 있는 일. 활자화된 원고는 최소한 3개월 동안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3개월이 지나면 원고들은 모두 버려졌으나 최근에는 자기원고를 찾아가거나 남의 원고를 얻으려는 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문학관계 잡지사 측의 이야기다.
이제까지 원고를 수집한 사람들은 대체로 신문·잡지·출판에 관여한 문인들. 「현대문학」등 문학잡지 편집에 오래 관여했던 김구용씨는 3,4백명에 달하는 문인들의 원고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김억 이광수 최남선 오상순 한용운 최재서 이상 김진섭 홍사용 등 지금으로서는 거의 구하기 불가능한 작고문인들의 원고가 포함돼있다. 한편 신문·잡지사에 오래 근무한 박재삼 성춘복 김후란씨 등도 모두 2백명 이상의 문인원고를 수집하고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있는 귀한 원고는 계용묵 이병기 신석정 신석초 박영준 김현승 등 60년 이후 작고한 문인들의 원고다.
최근 문인원고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문인들은 잡지편집에 관여하고 있는 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시인 권오운(「학원」「진주」「소설주니어」) 김연균(한국문학) 감태준(현대문학) 등이 그들. 이들은 물론 수집이 일천하기 때문에 60년대 이전 작고한 문인들의 원고는 별로 수집하지 못했으나 그 나름대로 상당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것.
이들은 원고를 구하려하는 많은 문인들에게 이미 수집한 문인의 다른 원고를 적지 않게 나누어주었다고 말한다.
김후란씨에 의하면 얼마전 여류시동인 「청미회」가 시판화전을 열었을 때 육필원고를 그대로 판화로 만든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것을 보면 문인의 육필원고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
김구용씨는 『글은 곧 마음』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작고문인의 원고를 대하면 마치 그 문인이 살아서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된다고 말한다. 김씨는 수년전 시인 김수영씨가 사고로 작고했을 때 그의 시 원고를 찾아들고 그가 되살아온 듯한 느낌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한편 김윤식씨는 그 자신 2백여 문인들의 원고 첫장을 수집해왔으나 『그것은 별로 커다란 뜻을 갖지 못한다』면서 『후세에까지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모든 원고를 원형 그대로 전체를 보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김씨에 의하면 구미 여러 나라에서는 발표된 문인의 원고보존이 제도화돼 있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갈이 불과 50∼60년 동안 언어표현이 크게 바뀌는 나라의 경우 원고의 원형보존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귀찮더라도 자기의 대표작쯤은 원고를 반드시 보관해야한다는 것이 김씨의 견해인데 자기원고를 거의 모두 보관하고 있는 문인은 황순원씨 정도. 황씨는 발표된 후면 원고를 즉시 되찾아가기 때문에 황씨의 원고는 첫장이나마 수집한 문인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화여대나 건국대학교같은 대학도서관에서도 문인의 원고수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수집에 착수하고 있으나 이 역시 원고 첫장 수집정도로 그치고있다는 것.
어쨌든 일부문인들로부터 시작된 문인들의 원고수집「붐」은 우리 문단의 새로운 바람으로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같은 움직임은 점점 더 확산될 전망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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