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이색경영<유한의 의사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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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에 비해 특이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살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중 기업경영의 전통에 있어서나 그것으로 나타난 실적과 사회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유한양행의 「화백제도 식」경영을 살펴본다.
언뜻 보기에 우리나라 풍토에서 기업경영을 화백제도 식으로 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유한이 1926년 유일한 씨에 의해 창설되면서 현재 조권순 사장(12대)에 이르기까지 변할 수 없는 불문율은 경영상의 결정은 항상 합의제에 의한다는 것이다.

<50년간의 불문율>
민주적 경영을 뒷받침해주는 조직이 이사회와는 별도기구인 운영위원회와 부장회의제도 운영위원회는 담당상무 및 간부로 구성되며 필요하면 언제나 부장 및 중견사원의 출석이 가능하다. 회사의 일상적인 운영에 관해 사장에게 책임을 지우며 자문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반적 회사정책 수립기관이다.
부장회의는 때때로 과장까지 참석해 각부간의 의사·정보교환과 최고 운영 층에 경영개선에 관해 의견을 전달하고 문제점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감사실의 권한도 국내 다른 회사에 비해 크다. 감사기능은 이원화되어 업무감사는 기획「팀」이 맡고, 감사실은 회계감사에 주력해 종합감사결과를 주주총회에 보고한다.
이렇게 주주총회·이사회·운영위원회·부장회의·감사실의 기능이 문자 그대로 균형과 견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영체제가 확립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창업주인 유일한 씨의 경영철학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

<공익경영 이미지>
유일한 씨는 『기업은 한 두 사람의 손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두뇌가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발전된다』는 생각을 항시 사원들에게 주지시켜 종업원은 종업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 기업의 소유주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애썼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적 경영에 대해 종업원의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사원은『경영의 구심점이 없어 진취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고 지적하기도 한다.
최고경영층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사원들의 불만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긍정하면서도 현재 채택되는 경영방식을 대체할 더 좋은 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다른 차원에서 업종다양화를 통해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한의 합리적인 경영은 연평균 기업 신장률 30%, 한국의약품총생산액의 9%, 건전한 재무제표 등에서도 흔적을 나타내지만, 보다 극적인 「스토리」는 67년 흑색제보를 받은 국세청의 세무감사「팀」이 10일간의 조사 끝에 손을 들고 만 것으로. 이 사건으로 유한은 그 이듬해 모범납세업채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전화위복으로 기업「이미지」부각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유한의 판매전략에서 크게 효과를 거둔 것은 「디테일맨·시스팀」과 시장종합정보기능의 도입이다.
일반적인 「세일즈맨」 체제를 「디테일맨」과 분리해서 소매상·병원·소비자에 대한 판매 교육과 철저한「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판매저항을 극소화하고 공익경영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구현시키는데 큰 몫을 차지했으며 약국과 병원과의 의학 「세미나」는 판매뿐만 아니라 생산전략과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마키팅」 기능을 종합하고 과학화해 시장정보기능을 집중시킨 것이다.
의약제품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도 항시 남녀노소별 시장성을 면밀히「체크」하고 그때마다 수익성 있는 상품개발을 기술개발부를 통해 발전시켜 한 단계 앞선 제품생산으로 경쟁에서 이기고는 했다. 기업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유한의 특성은 본받을만한 점이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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