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풍요의 현장을 찾아 그 저력을 캔다|좁은 시장·자원 빈곤을 이겨낸 스웨덴 다국적 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워낙 인구가 적은 나라라 일손이 부족하다고 치자. 그러면 남의 나라 일손을 빌어 쓰면 그만이다. 또 워낙 국내시장 바닥이 좁은지라 기업들이 기지개를 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국외에 시장을 만들고 거기다 물건을 내다 팔면 된다.
남의 나라에 수출한다는 게 물론 누워서 떡 먹기는 아니다. 그게 무슨 이유로건 어려워지게 되면 또 하는 수가 있다. 아예 그 나라에다 공장을 차려 놓고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고 보면 나라 크기야 작건 말건 돈벌기 쉽고 부자 되기 간단하다. 다만 실제로 그런 식으로 성공한 나라들이 아주 드문 게 탈이지만.
물론 있긴 있다. 이를테면「스웨덴」. 북구 구석배기 조그만 나란 대도 억척으로 돈 잘 벌어 신통하게 잘 산다. 속된 말로 국제적으로 활개를 치고 덩치답지 않게 굵게 놀아 온 덕이다. 좀더 전문적인 말을 빌자면 기업의 국제화나 다국적 화에 앞장서 온 덕이라는 거다.

<다국적기업 세계 으뜸>
사실 인구크기에 비해 소위 다국적 기업이라는 게 제일 많은 게 바로「스웨덴」이고 또 이 나라를 세계 으뜸에 속하는 부자로 만든 요소로 치자면 우선 손꼽힐 만한 게 그들의 다국적 기업들이다. 그게 덩어리치고도 꽤 크다는 것은 몇 가지 통계만을 봐도 알만 하다-. 「스웨덴」의 전 공산품의 반, 그리고 전체 수출량의 60%는 이 다국적 기업들에서 나온다.
이들이 국외에 갖고 있는 자회사 수는 생산업체만도 4백80개에 현지 고용원수는 20만 명이나 된다. 판매회사까지를 치 면 회사 수 1천8백에 인원 30만 명, 작은 나라가 국제적으로 「설쳐도」이만 저만이 아니다.
좀더 구체적인 예들을 들어보자.
「SKF」하면 그 상표를 매일 보고 지내는 사람이라도 흔히는 그 본적을 모를 정도로 무국적이자 다국적인「스웨덴」계 기계부품 제조회사다.「볼·베어링」으로 대성한 SKF는 6만1천명을 고용,「베어링」을 주종으로 작년한해 미화로 16억「달러」의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
전 인구가 서울시 만한 나라의 단일 기업체 치곤 우선 그 크기가 어지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랄게 있다. 이 회사 사원의 8할은「스웨덴」아닌 외국에 있고 매상의 90%도 국외에서 올렸다.
역시 매상고 15억「달러」. 종업원 수 6만6천명 규모의 전기 및 사무용품「메이커」인「일렉트로룩스」의 경우 역시 국외종업원수가 전체의 63%, 국외매상이 68%라는 데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생산이나 판매활동은「스웨덴」이란 한나라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넒은 세계를 무대로 한다.

<사원의 80%가 외국인>
그리고 전화·통신 기기 시설을 생산하는「L·M·에릭슨」, 자동차의「볼버」와「사브·스카냐」, 광산·운수업의「그란제스」, 건축자재의「스위디시·메치」, 그리고「알파·라발」·「존슨·콘세르빈」등등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쳐 온 다국적 대기업체들에 있어서도 얘기는 비슷하다.
긴말을 그만 두고「스웨덴」의 20대 기업들 가운데 작년 말 현재 해외에 종업원을 더 많이 갖고 있는 회사가 반을 넘는 11개 사고, 그런 국외종업원수가 이 나라 전 취업 인구의 20%를 넘는다는 것만을 보더라도 세계에 발 뻗쳐 온「스웨덴」기업의 국제성이란 것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들의 해외진출이 이렇게 엄청나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내의 갖가지 수요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의 중앙은행 「릭스·뱅크」의 철저한 감독에 의해 담보된다. 이를테면 해외자회사의 주의 전매는 중앙은행의 허가 없이는 할 수 없고 해외이윤도 현지에서의 배분이나 재투자에 필요한 최소 부분만을 빼놓곤 본국으로 송금되게 돼 있다.

<외국인 지분 7%정도>
작년 한해「스웨덴」계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서 한 신규 또는 재투자가 국내투자의 22%정도라니까 그들의 해외진출이 국내를 비워 두고 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또 국내산업을 통틀어 외국인 지분의 주가 전체의 7%정도라고 하니까「스웨덴」기업의 다국적 성 운운하더라도 그 지배적 고지나 실속은 어디까지나「스웨덴」사람들 손에 움켜쥐어져 있는 셈이다.
「스웨덴」기업들이「바이킹」의 후예답게 세계를 무대로 활개를 치게 된 근본적인 힘은 국내 자원이나 시장의 협소가 가로지른 제약들을 깔아뭉개고 밖으로 뻗어 자라려는 그들의 억척이나 야 심이었었다. 또 그에 못지 않게 큰 밑천이 돼 준 게 그들의 놀랄 만한 발명성과 창의성이다.
다국적 회사의 비 조로서는 벌써 한 세기 전 세계도처에「다이너마이트」공장을 차려 놓았던「노벨」상의 창시자「알프레드·노벨」을 흔히 든다. 그 원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폭발물의 발명에 있었다. 발명과 그의 기업화라는 전통은 그후에도「스웨덴」다국적 회사들의 성장을 가능케 하고 떠받치며 이어져 내려왔다.
SKF는 1907년「스벤·윙비스트」에 의한「볼·베어링」의 발명에 힘입어 자라난 기업이다. 거물기업「E·M·에릭슨」의 성장 그늘에도 1877년 창설자「에릭슨」에 의한 궤 상 전화의 발명이 있었다. 성냥공장으로부터 세계굴지와 건축자재 생산기업으로 자란「스위디시·메치」의 시발점 또한 1855년「J·E·룬트스트롬」에 의한「안전성냥」의 발명에 있었다.

<바이킹의 진취성 발휘>
그리고「일렉트로룩스」와 가정 전기용품의 초대 급「메이커」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1908년「A·웨너그랜」이 개량된「배큠·크리너」, 그리고 1923년「발자·폰·플라탠」이 「컨덴서」냉동기를 고안해 낸 덕분이었었다….
이와 같은 창의성이 그저 한 개 특정상품의 고안에만 그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상품들의 기획·개발, 생산·판매를 잇는 기업활동전면에 발휘돼왔고 그들 전래의「바이킹」적 진취성은 그런 활동을 언제나 활기차게 추진하는 힘이 돼왔다는 것이다.
인구 서울 만한 나라가「볼버」와 같은 명 차로 세계에 군림한다.「비겐」전폭기·「S」형 전차 등 군용중장비를 만들어 해외에 내다 만다. 40만t급 유조선을 진수시키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 자회사들을 증식하면서 기업의 다국적 거물로 행세한다 하는 따위가 얼핏 의의라면 의외다.
그러나 그건 오랜 세월 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남보다 한발 앞서 뛰고 한창 앞서 생각하고 남보다 한발 짝 더 뛰고 한 창의와 진취와 노력의 결정이라 한다면 그걸 굳이 의의라거나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글=박중희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