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란 무엇인가|이윤동기와 사회적 책임(33)기업의 도산<한국적 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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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정치인이 『목수가 집을 짓는다고 해서 꼭 자기가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만든 조직에서 떠난 적이 있는데 기업에서도 그런 예가 많다.
60년대 말 정부에 의해 강제로 단행됐던 부실기업정비에 의해 큰 기업들의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
부실기업정비는 관주도의 한국적 기업 도산 및 구획정리라고 볼 수 있다.

<자산보다 많은 빚>
사실 한국의 기업들은 대부분 도산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후반기부터의 팽창「무드」속에서 기업들은 차금경영의 생리에 젖어왔다.
큰 기업이라 해도 자기자본 비율이 20%가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심지어는 빚이 자산보다 많은 곳이 대기업 중에도 허다하다. 아슬아슬한 차금경영의 곡예 속에서 아차 하면 도산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용케 잘 버티어 나가는 것은 정부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다. 큰 기업이 경쟁에서의 낙후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강제 도산 당한다는데 한국적 특성이 있다. 부실기업정비로 몇 개의 큼직한 기업「그룹」들이 강제해산 혹은 영토분할을 당했다. 또 많은 경영자가 스스로 만든 기업에서 손을 떼야했다. 기업에서도 역시 창업만큼 수성이 어렵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산의 비극이 무수히 일어났던 것이다.
짧은 기간 중 주인이 몇 차례나 바뀐 대표적 기업은 원진「레이욘」과 아세아 자동차를 들 수 있다.
원진「레이욘」은 맨 처음 화신「그룹」의 박흥식 씨가 착상, 천연섬유에 가장 가깝다는 「비스코스」인견사를 시작한 것이 잘못이었다. 만약 박씨가「비스코스」인견사 대신「폴리에스테르」나「나일론」을 시작했으면 오늘날의 재계판도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화신에서 흥한화섬을 처음 만들때만 해도 우리 나라의 화직업계는 황무지나 다름이 없었다.
흥한화섬은 기계도입에서 차질이 난 데다가 수요난조 등으로 초창기부터 고전했다. 결국 채권자인 산은으로 소유권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산은이 맡고 나서도 흥한화섬은 문제기업이었으나 군납업자인 정영삼씨가 인수하고 나서부터 서광이 보이기 시작, 마지막 단계에선 흑자기업으로 반전됐다.

<정비는 보도인가>
흑자반전의 가장 큰 이유는 국내수요증가와 일본의「비스코스」공장들이 공해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같은 품목이라도 때에 따라 음양이 있는 것이다. 정영삼 씨는 흥한을 세진「레이욘」으로 고쳤다가 최근 원진「그룹」에 넘겼다. 원진「레이욘」이 바로 그것인데 주인이 박흥식씨→산은→정영삼→이원천씨 등으로 유전된 것이다.
화신에서 맨 처음 흥한을 내놓게 된 원인은 시설투자의 불합리·자금유출·자기자본부족·원가고가 이유였다. 그러나 당시 그 정도의 약점은 차관기업의 공통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흥한「비스코스」가 비운을 당한 것은 기업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뀐 원진「레이욘」은 지금엔 오히려 착실한 흑자기업으로 손꼽히고있다.
아세아자동차도 창업주인 이문환 씨로부터 동국제강→산은→기아산업으로 바뀌었다.
이의 유전과정도 흥한과 비슷하나 아직 적자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창업자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손을 뗀 기업은 인천제철 (이동준→산은) 대성목재(전택보→조흥은행→신동아「그룹」) 「유니온·세로판」(이동준→산은→서통) 등이 있다.
당시 부실기업을 정비하면서 정부는 『정비 대상이 된 기업들의 대부분의 부실 원인이 타인자본에의 과도한 의존과 금리부담의 과중·높은 생산원가·기술부족·국제경쟁조건에의 부적응·우수한 경영진의 결핍』이라고 들고 『부실기업정비가 우리 나라 기업풍토나 체질의 개선에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과연 그후의 결과를 보아 이를 그대로 수긍할 수 있을 것인가.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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