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특기교육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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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맹모삼천.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에게 좀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했다는데서 유래된 잘 알려진 중국의 고사다.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훌륭한 인물로 키우려는 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욕심이자 소망.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전통적으로 높았다. 이같은 전통 탓인지 요즈음 삼천 정도가 아니라 삼십천마저 불사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때문에 안타까운 부작용도 많이 낳았고 웃지 못할 촌극도 수없이 연출했다.
우리나라에 특기교육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전부터. 주로 대도시의 중류층 이상의 가정이 중심이었다. 특히 이같은 「붐」은 68년 이후 중학입시가 폐지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더욱 가속화됐다.

<피아노 한대쯤 있어야>
「바이얼리니스트」 정경화양이나 정명훈군 등이 어린 나이로 세계의 정상에 올라 「세기적 천재」로 각광과 이목을 한 몸에 받았을 때부터 많은 부모들은 아마 그들의 자녀들에게서도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는지 모른다.
요즈음은 곳곳에서 「바이얼린」이나 그림도구 등을 들고 다니는 어린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웬만한 가정에는 자녀들이 받은 갖가지 상장과 「트로피」를 자랑스럽게 진열해놓고 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곧 「훌륭한 부모」「행복한 부모」의 상징이 되었고 집안에 「피아노」 한 대쯤은 갖춰져 있어야 「교양있는 가정」으로 행세하는 풍조다.
더우기 최근에는 그림도구나 「바이얼린」을 들고 다니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외국나들이」가 선망의 대상으로 한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6·25이후 어린이합창단이 미국공연을 했을때부터 -물론 몇몇 순수 고아합창단을 제외하곤- 어린이들의 외국나들이는 곧 부모들 실력의 전시처럼 생각될 만큼 재력과 연결돼왔다.
돈을 엄청나게 써서 나들이「팀」에 낀다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예능을 뛰어나게 하려면 그만큼 돈이 쌓여야 이룩된다는 풍토에서다.
「리를·엔젤스」나 선명회 합창단 등의 이름난 단체보다는 일본××단체초청, 미××재단 초청 등의 소규모 어린이 해외나들이가 요즘 국민학교마다 심심찮게 화제가 되고있다.
그리고 특히 방학 때면 어른들도 그렇게 어렵다는 「해외연수」가 어린이들 사이에선 드물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레슨」받는 선생에 따라서 해외예술학교로부터 「서머·스쿨」초청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런 수완(?)을 가진 예능지도선생은 그만큼 인기가 높고 수업료도 비싸다.
『방학 때 친구들이 외국 갔다와서 선물을 주었다고 들고 들어왔을 때는 부모로서 가슴이 아팠어요.』 어느 자모는 이런 어린이 해외나들이는 다 돈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방학동안엔 해외연수>
이 같은 풍조는 수많은 학원과 개인교수의 난무를 낳았다.
그림이전 「피아노」건 나아가 무용·태권도·수영·승마에 이르기까지 소위 특기교육을 받고있는 대도시 어린이들의 정확한 통계는 조사된 것이 없으나 상당한 수에 이르고 있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 소위 일류 국민학교의 어린이들은 반수이상이 특기교육을 받고있는 것으로 일선교사들은 어림잡는다.
서울의 중류층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진 Y「아파트」의 경우, 10세 안팎의 어린이를 둔 가정의 80∼90%가 특기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주부 P여사는 말한다. 여기에는 물론 「아파트」특유의 경쟁의식이나 유행심리도 있겠지만 요즈음 불타고있는 특기교육「붐」의 한 단면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실례가 될법하다.
이 같은 「붐」은 과연 얼마나 되는 「천재」를 낳았을까. 물론 단순한 교양과 인격형성을 위한 교육이었다면 해답은 간단하겠으나 상장이나 「트로피」에 대한 과열된 경쟁모습을 보면 해답은 또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대도시의 몇몇 유명공연장에서는 이따금 어린이의 독주회가 열린다. 대부분 자비로 마련되는 이 행사에 「오키스트러」와의 협연이 포함되면 한번 개최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3백여만원.
그러나 이 「호화음악회」에서 얻는 결과는 경력 난에 한줄 더 오른다든가, 외국에 갈 때 여권절차에 편리하다든가 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자식자랑」 한번에 집 한채 값이란 계산이다.
봄·가을「시즌」이면 고궁 등지에서 열리는 어린이 사생대회에는 사단법인××미술연구회·○○아동미술연합회 등 그럴듯한 간판을 앞세운 유령단체들이 적지 않아 한때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상장·트로피의 매력>
이들은 적지 않은 참가비를 받고 참가어린이 대부분에게 갖가지 명목의 상장과 「트로피」를 수여해 부모들의 「자랑거리」를 만들어준다. 심지어 이런 단체와 협력하지 않는 미술학원은 운영이 어렵다는 얘기도 귀에 설지 않다.
어떻든 자녀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여건을 마련해주려는 부모들의 욕심은 탓할 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얼마전부터는 어린이들의 능력과 적성을 일찍 발견해 개발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기교육론」까지 한창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능력과 적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허영과 경쟁심에서 강요되는 무정견한 조기교육에는 커다란 부작용과 병폐가 따르고있어 문제다. 『자녀들의 능력과 적성을 무시한 부모들의 강압적 교육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모든 일에 대해 곧 염증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그들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해 반항심만 높이며 다른 분야의 발달에까지도 커다란 지장을 초래합니다.』 박준희 교수(이대·교육학)는 이같이 경고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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