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에게 눈길 한번 안 준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2일 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을 찾은 김정은(오른쪽 셋째). 군복 차림이 황병서 신임 군총정치국장이다. 노동신문은 3일자 1면에 최용해가 빠진 이 사진을 실었다.

김정은은 행사 내내 최용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냉랭한 분위기를 간파한 듯 최용해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2일 강원도 원산시 송도원. 동해 바다와 백사장,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이곳에선 국제소년단야영소 리모델링 개관식이 열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노동당·군 간부가 자리한 행사였다.

 조선중앙TV가 6일 방영한 관련 동영상에는 최용해 전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추락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개관식에 나온 김정은의 좌측엔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우측엔 황병서 신임 총정치국장이 등장했다. 황병서를 선두로 당비서 김기남·최태복에 이어 최용해는 네 번째로 호명됐다.

 북한 TV는 개관 연설을 맡은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연설자는 ○○라고 강조했습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참석자 소개 때 딱 한 번 ‘조선노동당 비서 최용해’로 호칭했다. 당·군을 거머쥔 2인자 격인 총정치국장에서 당 비서로 좌천됐음을 공식으로 알린 셈이다. 최용해는 이날 차수(별 네 개인 대장보다 하나 높은 북한 계급) 계급장 군복을 벗은 양복 차림이었다. 김정은이 최용해 연설 때 못마땅하다는 듯 찡그린 표정을 보인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개관식 후 열린 소년축구대회 때는 김정은이 관람석 의자를 황병서 쪽으로 돌려 연신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반대편 최용해와는 등진 모습이었다. 이일환 당 비서나 전용남 청년동맹 제1비서도 김정은에게 바짝 다가가 서로 경쟁적으로 말을 거는데도 최용해는 먼발치에 있었다.

 이동 때 김정은 동선을 가로막는 모양새가 되자 놀라며 황급히 길을 비켜 주는 장면도 포착됐다. 불꽃놀이 때도 다른 참석자와 달리 긴장을 풀지 못하는 듯했다. 옆에 자리한 김여정(김정은의 여동생)만이 한 차례 최용해의 말 상대가 돼 줬다. 행사 이튿날인 3일자 노동신문은 1면에 간부들과 환담하는 김정은의 사진을 실었다. 최용해는 빠져 있었다.

 영상자료를 분석한 정부 관계자는 7일 “최용해가 예상보다 상당히 위축돼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권력 내에서 사전 조율된 조동(調動·직무상 자리를 옮긴다는 의미의 북한식 표현) 수준이라기보다는 징벌성 좌천 인사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정보 당국은 최용해가 권력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 직위와 차수 계급도 박탈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관련 첩보 수집에 나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용해가 북한 정권 수립에 지분을 갖고 있는 집안(김일성 동료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출신이란 점에서 숙청 등 극단적 조치보다 당 비서 직위를 부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