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내의 바다 불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반세기만의 혹한으로 불렸던 지난겨울의 한파는 육지의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데 이어 바다에까지 30년 내의 흉어현상을 몰아왔다.
이 같은 흉어사태는 5월 하순이 되도록 걷히지 않는 바다의 냉수 대 현상으로 수온이 낮아 난류어군의 북상길이 막혔기 때문이라 한다.
예년 같으면 목선의 뱃고동이 울려 퍼지고 파시를 이루며 흥청거릴 각 어항에는 출어를 포기한 어선들이 빈배로 떠있고 어판장에는 제철을 만난 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꽁치·고등어·갈치·병어 등도 구경하기가 힘들게 됐다.
흉어의 원인이 되고 있는 냉수 대 현상은 자연적인 것이라, 인위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로 인한 어민의 생계곤란과 생선 값 폭동 등 당장 절실한 문제들이 눈앞에 닥쳐 사태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작년 겨울 3백50여명의 어부들이 실종된 동해안 조난사고의 아픈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어민들로서는 여름이 다 되도록 계속되는 흉어사태야말로 설상가상의 낭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잖아도 최근 수년동안 근해 어 자원의 고갈로 고기잡이가 잘 안 되는 데다 세계 해양국들이 다투어 영해를 확대하고 경제수역을 선포하는 바람에 원양어업마저 타격을 받는 등 어민들은 잇단 시련의 격랑 속에서 기진맥진해온 실정이었다.
여기다 유류값 인상으로 출어 경비까지 급증, 성어기에도 이른바 「만선적자」를 면치 못한 만성적인 불황을 감안할 때 전례 없는 흉어를 맞은 어민들의 딱한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흉어의 여파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꽁치·고등어류의 생선을 즐겨온 서민들도 때아닌 흉어 때문에 생선을 사기가 힘든데다 값마저 급등함에 따라 늘어나는 가계부담으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 동안에도 대부분의 서민용 주부들은 시장을 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는 반찬값 때문에 1근에 2천원씩이나 받고 있는 쇠고기는 감히 사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작 한두 마리 생선으로나마 식탁을 꾸려 나갔던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생선조차 마음놓고 사먹기가 어렵게 된 것을 생각하면 별미를 맛보지 못하게 된 것은 고사하고 가족들의 건강유지가 걱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바다의 불황은 어민과 소비자들에게 다 같이 참기 힘든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음을 절감케 한다.
불황 속에 어려움을 당한 어민들을 위해서는 각종 융자금의 상환기간 연장·전도자금의 방출·면세 유류의 공급 확대 등 보다 적극적인 당국의 지원책이 지체없이 강구돼야 할 줄 안다.
이와 함께 소비자의 부담을 터무니없이 가중시켜온 수산물유통과정의 고질적 다단구조를 하루 빨리 개선하는 것도 수산당국이 당면한 과제의 하나다.
현행 수산물의 유통과정은 생산자→위판→경매→중매인→수송→소비지중앙시장→도매시장→경매→중매인→하청→소매→소비자 등 10여 개의 접점을 갖는 전근대적「메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지에서 20원 미만인 꽁치 한 마리가 최종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때는 1백원이 넘게 껑충 뛴다. 유통과정에서 중매상인들이 80%이상의 「마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생산자와 소비자만 골탕을 먹는 셈이다. 수산당국은 우리 나라 수산업의 확대 재생산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 같은 비합리적 유통구조임을 인식하고 어민과 소비자를 다 함께 보호하는 합리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