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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약품 쌓인 실험실서 밥먹는 학생들 … 기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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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3월 시내버스가 추돌해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날 기사는 15시간 넘게 운전했다. [뉴스1]

“평형수(Ballast)를 적게 채우고 화물을 과적한 것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는 보도를 봤어요. 한국에선 대학 교내에서 오토바이 한 대에 세 명씩이나 함께 타고 다니고,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승객들이 벌떡 일어나요. 화학약품이 가득한 대학 실험실에선 학생들이 태연하게 밥을 먹더군요.”

 국내 한 국립대 대학원에 유학 온 독일인 A씨(27)는 한국인의 안전 불감증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독일과 너무 달라 기겁했다고 한다. 그는 “제주도에서 전남 완도까지 배를 탔는데 안전사고에 대한 사전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를 탈 때는 사고 걱정을 하면서도 배를 탈 때는 방심하는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기본적인 안전에도 둔감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외국인의 눈을 통해 그대로 확인된다. 스웨덴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건국대 경영학과에 유학 온 나탈리(23·여)의 체험담이다. 그는 “버스를 탔더니 너무 빨리 달리고 승객이 좌석에 앉지도 않았는데 출발해서 놀랐다. 운전기사가 난폭운전을 해도 항의하지 않고 불안한 표정도 짓지 않는 한국인들이 더 이상했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출신 여성 야노 마유미(43)는 “일본에선 택시에 타면 앞뒤 좌석 모두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일본에 갈 때마다 운전기사가 (한국식으로 벨트를 안 맨) 나를 지적했다. 한국에선 심야에 택시가 폭주족으로 돌변하기 일쑤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초고속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진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선진국은 기본을 중시하는 시민의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다. 영국에선 버스 운전자가 3시간 운전하면 30분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하루 9시간 이상 운전할 수 없고, 6일간 일하면 하루는 휴무해야 한다. 차량에 부착된 타코미터(Tachometer·회전속도계)에 모든 정보가 기록된다.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최장 한 달간 운행이 정지된다.

 미국 뉴욕시는 화재 점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뉴욕 소방국(FDNY)은 11개 지역사무소 감독관 350명을 동원해 매년 소화기·스프링클러(Sprinkler·살수기)·폭발물·화재경보기 등 화재 안전시스템을 점검한다.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선 정부의 안전 조치가 엄격하다. 2012년 4월 군마(群馬)현에서 운전자 졸음운전으로 7명이 숨지는 관광버스 사고가 나자 국토교통성은 여행사가 고객을 모집해 버스업체에 위탁하는 고속 관광버스를 아예 폐지했다.

고석승 기자, 뉴욕·도쿄·런던=이상렬·김현기·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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