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작품 … 아버지·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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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후배들이 저더러 ‘형부 같은 뮤지컬 배우 한 사람 소개시켜달라’고 해요. 그럼 이렇게 얘기하죠. 앞으로 잘 될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한 달에 60만원밖에 못 벌고 초라해. 한동안 네가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만나보겠느냐고. 거기서 딱 브레이크가 걸리죠. 그 선택을 한 사람이에요. 아내는.”

배우 이석준(42). 10여 년 전, 열정은 가득하지만 호주머니가 가벼운 이 남자에게 추상미(42)는 가능성을 봤고, 부부가 됐다. 가벼운 연애조차 조건을 따지고 재는 요즘 젊은이들과 달리 통속적인 사회적 잣대와 무관한 선택을 한 셈이다. “대체 뭐하는 애길래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지도, 그렇다고 유명하지도 않은데 추상미랑 연애하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진짜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추상미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부모인 고(故) 추송웅 그리고 김신자에 이어 2대째 배우 부부로 살아가는 이석준·추상미 동갑내기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점에 끌렸는지.

이석준(이하 이)=“원래 연예인을 안 좋아했어요. 우연히 같이 연극을 하게 됐는데, 처음엔 잘 하지도 못하는 연기를 막 해대는 그런 부류의 연예인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새벽 3시까지 연습하는 거에요. 역시 피가 있구나, 연예인 이전에 배우구나, 싶었어요. 완전히 반했어요.”

-나보다 유명한 여자친구, 나보다 덜 버는 남자친구 두는 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인지도나 수입 때문은 아니에요. 다만 내 그릇보다 아내 그릇이 더 크다는 것, 내가 보호해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내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 같이 느껴져서 힘들었죠.”

추상미(이하 추)=“아버지 영향인 것 같아요.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라 자기 세계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있는 예술가였죠. 창의적인 아티스트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게 중요하잖아요. 남편에게서 세계관이 다른, 그러니까 돈(유명배우)보다 명예(아티스트)를 추구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봤죠. 그게 좋았어요.”

이=“신기하게 추상미씨 집안 자체가 돈에 맞춰져 있지 않아요. 장모님도 ‘자네, 돈 많이 벌게’가 아니라 ‘돈은 이 정도 벌면 되는데 영향력 있는 예술가가 되라’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부부가 배우라서 좋은 점이 있을지.

이=“아내만큼 내게 신랄하게 모니터링 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연출가가 못 보는 부분까지 찾아낸다니까요. 여섯 살 때부터 자기 아빠 연기를 보고 자랐잖아요. 이론적으로 설명을 못 해도 심미안이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한때 아내가 내 공연 보러 오는 게 정말 두려웠어요.”

추=“연애할 때 잠적한 적도 있어요.”

이=“너무 심하게 얘기하니까. 이건 좋은데 이건 개선되면 좋겠어, 라는 식이 아니에요. 스스로 몇 점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따져 물어요. 눈빛도 무서운데. 맞는 말인데도 화가 확 나죠. 다음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공연을 못 하겠는 거에요.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잘못된 걸 계속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잠적했죠.”

추=“남편에게 혹독하게 한 게 유전 같아요.”

-유전이라니.

추=“지금은 아버지(故 추성웅)가 더 알려졌지만 어머니(김신자, 본명 김정신)도 배우였어요. 아버지가 무명배우일 때 이미 국립극단 메인 배우였던 어머니와 결혼을 했죠. 어머니는 아버지를 성공시켜야겠다 마음 먹고는 아버지 공연 때마다 노트에 날카로운 모니터링을 하셨대요.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 첫 공연 때는 미흡한 게 너무 많아서 노트에다가 ‘이렇게 해서는 공연 망할 것 같다’고 했다죠. 아버지가 화 내고 집을 나가셨다나요. 그런데 다음날 공연을 보니 하루만에 싹 바꿨는데 너무 좋더래요(※1977~85년 공연한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추송웅은 ‘모노드라마 거장’으로 불렸다). 신기하게도 내가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에요. 나한테 현모양처 DNA가 흐르는지 남편이 나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는지(※그녀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추=“아버지는 결혼하지 말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우리 가족이 불행하진 않았지만 아티스트라 가정적일 수가 없잖아요. 또 그 세대 아버지들이 다 그랬듯 가정 돌보는 데 약했고. 시간이 없는 거죠. 늘 잠든 후에야 집에 들어오셨으니. 어릴 땐 여름방학만 기다렸어요. 아버지가 지방공연을 갈 때 바캉스 겸해서 온 가족이 봉고차에 텐트 싣고 떠나곤 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해운대 천막극장’이에요. 당시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 소나무숲에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거든요. 낮에는 가족이 어울려 낚시 하고 해수욕 즐기고, 그런 낭만이 있었죠. 유년 시절엔 극장 다니면서 공연보는 게 일상이었어요. 대학 입학 후 연극반 활동하면서 이게 나를 사로잡는 진짜 내 길이구나, 하고 깨달았죠.”

-전공은 불문학인데.

추=“원래 문학을 좋아했어요.”

이=“데이트 시작하자마자 알게 됐는데 되게 이상한 사람인 거에요. 만나면 숙제를 줘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죄와 벌』같은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 하자고. 되게 어려운 고전을 일주일에 2~3권씩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어떤 분야를 공부하겠다 마음 먹으면 관련 책을 밤 새워 10권, 20권 읽어요. 빌리지도 않고 다 사요. 육아책도 최소 20권은 읽었던 거 같아요.”

추=“정보를 얻으려고 육아책을 본 건 아니에요. 아이 키우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으면서도 쉽게 무기력해지는 일이에요. 자기자신이 아니라 전부 아이를 위해 해야 하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상인데 아이랑 깊이있는 대화는 할 수 없으니 쉽게 지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죠. 나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서 읽은 거에요.”

아들 지명(가운데·30개월)군과 함께 한 이석준·추상미 부부.

-교육철학이 궁금한데.

추=“최근 본 『프랑스 아이처럼』이란 책이 좋았어요. 프랑스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실패를 많이 경험하게 한대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양을 가정에서 훈련한 후 세상에 내보내자는 거죠. 냉혹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아이를 어릴 때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거죠.”

이=“지명이(아들)를 보면 우리가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성장한다는 걸 느껴요. 이 얘기를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면 이미 그걸 넘어서 있는 걸 발견해요. 놀랄 일 투성이에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서 세월호 침몰사고가 남다르게 다가올텐데.

이=“조심스럽지만 우선 예술인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거꾸로에요. 예정된 공연을 다 취소하는 게 애도인 양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추=“공연예술의 기능 중에서 중요한 게 치유의 기능이에요. 음악회를 취소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죠. 지금 이 상황에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 방안에 틀어박혀 TV만 보는 건 아니잖아요. 문화예술 선진국이었다면 예술로 상처를 치유하자는 운동이라도 벌였을 텐데, 우리는 문화를 그저 ‘놀고 즐기는 걸’로만 알아요.”

-부모로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이=“배를 태웠을 때 혹시 잘못될까봐 두렵죠. 그렇다고 배에 안 태울 순 없어요. 두려움은 내 몫이지 아이한테 물려줘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해주겠다는 확신을 줘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피의자들) 엄벌에 처하겠다는 말만 나오니 공포심만 생기는 것 같아요. 아무리 슬퍼도 가족이나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울타리 없는 곳에서 슬픔을 느끼니 공포스러운 거죠.”

추=“이 사건 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말한다잖아요. 지금은 이웃이 당했지만 얼마든지 내가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거겠죠. 나가서 돈 벌고 경쟁에서 이기고, 이런 것보다 가족이 진짜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본질로 돌아오게 만든 사건 같아요.”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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