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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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수시간에 선생님이 『사과 넷을 세 사람이 나눠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문제를 내놓았다.
한 아동이 대답하기를 『한 사람이 한 개 씩 먹고 나머지 하나는 하느님에게 드리면 되잖아요』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틀렸다』고 한마디 뱉었다.
산수로는 엉뚱한 대답인 게 사실이다. 또 산수시간이니 그런 엉뚱한 대답을 한 아이를 선생님이 꾸중할 만도 하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아동은 가장 독창적인 대답을 낸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네 선생님들에게는, 그 독창성을 가려낼 여유가 없다.
만약에 그가 뛰어난 시인의 소질이 있었다면 「체흡」처럼 중학교를 나올 때까지 적어도 두 번은 낙제할 게 틀림이 없다. 「체흡」도 수학과 국어성정이 나빠 낙제 꾸러기였으니까.
「체홉」의 어린 때에는 학교성적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학교교육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체홉」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우리네 학교는 「체홉」과 같은 어린이를 바라지 않는다.
내일 보다도 상급학교에의 진학 율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과 반과 인문 반을 갈라놓는 것도 「뉴튼」과 「체흡」의 병아리를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대학입시를 위한 변 법일 뿐이다.
언젠가 「카네기」재단에서 미국의 교육제도를 3년 반에 걸쳐 조사 연구한 적이 있다. 그 결론은 현행 중·고교의 교육이 우수한 학생들의 창조력이며 지식에의 호기심을 말소시켜 가며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국에는 천재학교가 따로 있고 실험 고등학교들이 주마다 있고 예술가의 병아리들을 위한 특수학교들이 있고 명문고교들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능지수가 뛰어나게 높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카네기」재단보고서에서 염려한 것은 보통수준의 학생의 잠재능력개발이었다.
우리 눈으로 보면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다. 하기야 우리 나라에도 우열반이 있기는 하다. 평균이상의 학생과 그 이하의 학생과를 갈라 따로 가르치자는 방식이다.
추천 제에 의한 평준화의 부작용을 이것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발을 느껴온 것은 열등 반에 편입되는 학생의 부모들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 압력을 못 이겨서 당국에서는 그나마 우열반을 전면 폐지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희생될 내일의 「뉴튼」이며 「체홉」이 얼마나 될지를 염려할 겨를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학교가 뭣 때문에 누구를 위해 있는지 조차 잊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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