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입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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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인례는 예부터 사례에 포함되는 큰 예절의 하나였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누구나 관·혼·상·제의 예제와 함께 사람된 도리를 지키게 마련이다.
성인례는 사례의 첫 번째인 「관」의 예절로 인생의 첫 관문을 들어서는 의식이다. 남자의 경우는 관위, 여자는 계례(기비)라고 했다. 성년이 되면 남자는 관을 쓰고, 여자는 쪽찐 머리에 비녀(계)를 꼽는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성년을 뜻하는 계관(강관)이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남자는 관수를 끝내면 신분과 복장이 우선 달라진다. 차림새는 도포에 성인복장을 하며 댕기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었다. 아명을 버리고 평생 쓸 새이름도 갖는다. 자와 호는 관비에 참석한 유명선비나 벼슬을 가진 집안 어른이 하나씩 지어서 주기도 한다. 남자는 비로소 결혼할 자격과 벼슬에 오를 권리를 이때부터 가질 수 있다.
관위나 계례를 올리는 나이는 15세와 20세 사이. 이 의식을 앞두고 예정보다 3일전에 사당에 고하고 계빈(손님)을 청한다. 성년이 되는 사람은 전일에 청수에 깨끗이 감은 머리로 상투를 틀어 올리고 관을 쓴다. 손님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그 의식을 지켜보았다. 관자는 예식이 끝나면 마을의 촌장과 내빈을 찾아 인사를 다닌다.
이런 번거롭고 엄숙한 의식들은 성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를 함축하고 있다. 그 언행이나 예의범절에 있어서 성인이 되면 그만큼 구속을 받게 된다. 성년례는 까다로운 금기와 제한들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보다는 더욱 무거운 책임으로의 새로운 구속을 의미한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은 예부터 우리 선조들의 슬기 속에도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오늘의 시대감각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적 지위의 변화 속엔 언제나 그 무게만큼의 책임이라는 저울추가 달려 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하나의 교훈이기도 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나 미국 「인디언」들의 생활에선 아직도 원시적인 성인 식이 베풀어지고 있다. 그들 사회의 모든 행사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엄숙하고, 가장 까다로운 의식이 곧 성인 식이라고 한다. 할례나 발치 또는 문신 등은 그 대표적인 상징적 의례들이다.
오늘날 성인의 나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18세를 성년으로 하고있는 나라는 미국·독일 등 무려 50여개 국이나 된다. 시속의 감각이 조숙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간의 연대 감각은 원시로 돌아가는 것 같아「아이러니」를 느끼게도 된다. 「성년의 날」을 보내는 감회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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