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관계의 기본적 재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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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 이번 일본국회 회기 중에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일본의 집권자민당은 대륙붕협정 비준안을 오는 5윌10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는 하지만 이는 입발림의 대한 정치 연극에 불과하다.
설혹 5월10일에 중의원에서 이 안건이 가결된다 하더라도 비준동의안이 완전히 성립되려면 참의원에서 또다시 통과되거나, 현 일본국회의 회기가 참의원의 자동승인기간인 30일 즉, 6월9일까지 연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성이 없다. 그야말로 여야 백중지세인 일본 참의원에서 비준안이 통과될 리도 만무하고, 참의원 총선거가 7월3일인데 국회회기를 6월9일까지 연장할 리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 국회법은 제68조에서 회기 불 계속을 규정하고 있어 이번 국회회기 중에 참의원 절차가 끝나지 않는 한 중의원의 의결도 백지화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리시한을 사나흘도 아니고 열흘이상씩 늦춰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는 말은 우리를 우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기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미루어 중의원외무위에서의 강행처리 마저도 우리를 무마하려는 교활한 연극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의 배신과 무성의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우선 대륙붕문제에 관해서는 본 난이 작년연말이래 줄곧 주장해 온대로 단독개발의 길밖에 없다.
한일간에 공동개발이 약속되었던 대륙붕7광구와 그 주변은 지난68년 「에카페」의 기초탐사 이후 석유의 보고로 지목된 곳으로 우리는 이미 70년부터 개발채비에 착수했었다. 그러던 것이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이은 공동개발협정비준 지연 때문에 7년 가까이 일방적으로 기다리기만 해 왔다. 그만큼 기다렸으면 성의를 다했을 정도가 아니라, 굴욕적이라고 할 정도다. 이제도 더 기다린다는 것은 국민감정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이제 본격적인 단독개발 채비를 차려야만 한다. 만약 우리와 채굴계약을 맺은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단독개발에 소극적이면「유럽」석유회사들의 기술지원을 받아 직접 개발이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되면 외교적으로 적지 않은 물의가 야기되겠지만 적어도 국제적으로 원만하게만 해결하려다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로 하는 「에너지」자원의 개발을 무작정 유연시키는 우를 재연해선 안되겠다.
그리고 이번 日本의 또 한차례 배신을 계기로 한일관계의 전반적 재검토가 요구된다.
이번의 배신행위는 하나의 예일 뿐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의 행태는 선린으로서의 신뢰감을 심지 못했다.
그것은 비단 한일간의 불행한 역사 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일본인들이 보여준 태도에서 재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들의 경제 동물적인 역겨운 이기주의와 상업주의가 지적된다.
국교정상화 이후 작년 말까지 우리의 대일 무역적자 83억9천4백24만「달러」에 비해 일본의 대한자본협력은 불과 19억2천3백61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렇게 막대한 이득을 보면서 몰염치하게도 그들은 생사류·해태·참치 등 별로 규모도 크지 않은 품목에마저 수입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또 대한합작투자나 차관의 경우에도 기껏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일을 시작해놓으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배신을 떡먹듯이 자행해왔다.
더욱이 우리의 감정을 크게 자극하는 심정적 요인은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대한 우월감과 편견이다.
일본인들에게는 한때 한국을 식민통치 했고, 또 경제적으로 앞서있다는 사실이 우월감과 편견의 이유일는지 모르나 70년대란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과거의 잔학한 식민통치가 결코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갚아야만할 역사의 부채일 뿐이다.
더구나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정치인·지식인·언론인들이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편견에 집착하는데 이르러선 그 사이비 「진보성」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 몇 년 새에 약간 나아지기는 했다지만 그 동안 일본언론이 한국과 중공·북괴에 대한 보도에 있어 편파적 이중 기준을 적용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며칠 전 평양을 방문한 모 일본신문 편집국장의 망언도 이런 풍토가 아니면 어찌 가능했겠는가.
이 모두 어떻게 보면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잘못 형성된 한일관계의 양식에서 연유했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대로 까닭이 있어 심화되어온 상호 의존관계를 흥분과 의욕만으로 조급하게 탈피하려는 것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겠으나, 아무튼 단호한 한일관계의 재조정 자세만은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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