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계와 생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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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얘기다.
신천현에 장모라는 현령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관속들을 불러 이런 지시를 했다.
『아무날은 내 생일인데 누구를 막론하고 무슨 선물도 가져올 생각은 말게!』 현령의 생일이 어느날인지 알 턱도 없는 관속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그 생일을 맞아 관속들은 선물 꾸러미를 갖고 현령 집엘 갔다. 그는 짐짓 대노하며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그만 덮어두기로 하거니와 이다음 아무날의 내 마누라 생일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당부하네.』
각설하고-.
김일성의 생일이 또 다가오는 모양이다. 북경 발 외신은 북한이 최근 「스위스」제 금시계 4만개를 수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 금시계엔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의 얼굴이 새져져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마른 당나귀에 금목걸이를 걸어놓은 것만큼이나 어줍잖아 보인다. 더구나 이런 얘기가 바로 북경에서 흘러나왔다는 정보조차도 아이러니컬하다. 「금시계」와 「북한 사회」는 그 사회의 가장 허술한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도 같다.
북한은 이제까지 공산권들이 그렇듯이 무슨 날이면 훈장을 뿌리는 것이 하나의 관례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가슴에 달린 훈장의 수로 그 신분을 상징했었다. 개인의 기호를 「스테이터스·심벌」로 삼는 자유 세계의 풍속과는 다르다. 가혹할 이만큼 업적과 맹종의 도를 훈장 따위의 「심별」로 가늠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사고다.
같은 외신은 김일성이 그의 아들인 김정일에게 권한을 위양 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공산 세계에선 전무한 기이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북한 사회의 의식 구조가 의심스럽다.
분단 30여년 동안 김일성은 오로지 그런 목적만을 위해 북한의 주민들을 훈련시킨 것이다. 유일 체제의 주체 사상이란 김일성과 그의 혈통을 우상화하는 훈련이었던 것 같다.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보고 서방의 「업저버」들은 흔히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통을 벗어난 「도그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체제는 금시계까지도 뿌려야하는 체제로 타락한 것을 보면 더욱 한심스럽다. 지난해 북한이 북구에서 마약 밀수로 악명을 높인 것도 그런 타락의 일맥일 것이다.
멀지않아 김일성은 그곳의 관속들을 불러놓고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내 생일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덮어두기로 하고 내 아들 생일은 아무날인데 이래서는 안 되지!』
북한 주민들은 이런 체제 속에서 글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가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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