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등 잡역 속의 국교 아동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교는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즐겁고 보람있는 배움의 터전으로, 학교 안팎의 시설이나 분위기가 항상 그들의 몸과 마음이 구김 없이 성장하고 발달하도록 조성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창 감수성이 강한 이들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있어 학교 환경이야말로 인격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고 규정한 어린이 헌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2세 국민인 어린이들이 생활하고 자라나는 학교 환경이 권태롭다거나 위험하거나 또는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새삼 증언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살펴 볼 때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지겨운 학교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의무 교육인 국민학교에서마저 교과서의 무료 공급조차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데다 교사 부족으로 80∼90명이 콩나물 교실에서 복식 수업을 하면서도 잡부금 말썽은 그칠 날이 없지 않은가.
이런 가운데 인천시내 모 국민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주번이라는 완장을 채워 수업 시간에 교문을 지키는 수위 노릇까지 시켰다니 참으로 우울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행사 때마다 학생들을 동원하기를 능사로 알고, 무슨 기간마다 툭하면 학생들의 가슴에 「리번」을 달아 이들을 앞잡이로 내세우는 일이 다반사처럼 되어 있는 우리로서는 이 같은 일이 비단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현장일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말썽이 된 그 학교는 학교 주변에 통행인이 많은데다 하루 평균 4∼5명의 잡상인들이 출입하는데 학교 고용원은 2명뿐 이어서 이를 막지 못해 6학년생 10명을 뽑아 교대로 수위 역할을 시켰다는 것이다.
어린 아동들을 수위 대용 등 잡역에 쓰는 일은 이밖에도 많다. 자기가 수업을 받는 교실청소는 생활 실습도 겸해 마다할 수 없다하더라도 복도 담당 청소, 교장실·직원실 담당 청소 등 하루걸러 먼지 속에서 한서를 불구하고 교실 전체의 청소 잡역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태가 자녀를 자칫 자신의 소유물시하는 일부 부모들처럼 스승이 학생을 도구처럼 여겨 편의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취해진 비민주적 타성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학교가 가정으로부터 자녀 교육을 위탁받아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에 관해 독립적인 권리를 갖고 때로는 학생에 대해 엄한 벌을 주는 것도 허용되는 것임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권리 행사도 어디까지나 교육 본연의 목적과 부합돼야 하는 것이며 교육 목적에서 이탈, 학교 운영자나 교사들의 편의에 쫓아 함부로 행사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국민학교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육과 교육을 위해 중학교 입학 시험까지 철폐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을 도구로 삼아 무례한 일을 마구 시키고 수업까지 희생하는 따위의 처사는 언어도단이라 하겠다.
이리하여 부형들의 교육열은 높아도 이를 옳게 이끌어 소망스런 민주적 시민으로 개발해 나가기 위한 교육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우리는 이점·교직자들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교육 수요에 부응하는 재정 지원이나 적절한 장학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당국에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교 당국과 교직자는 다같이 이제까지의 타성에서 과감히 탈피함으로써 오직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갖추는데 더 한층의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