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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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송의 제일 가는 시인 소동파는 한식날에 오언고시를 두개 썼다. 모두가 슬픔에 잠긴 시들이다.
…분묘재만리
야의곡도궁
사회취불기.
…나를 키워주신 부모의 영이 잠들고 있는 묘는 만리나 떨어져 내 마음을 전하기에는 너무나도 멀다. 나도 내 길이 좌절되어 울고만 싶은 심정인데 차가와진 재는 아무리 불어도 타오르지 않는다.
동파는 부심이 많은 일생을 보냈다. 이 시를 쓸 때에는 호북의 황주에서 외로운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봄을 맞아 양자강의 물이 불어 오막살이 집문 앞까지 물이 찼는데도 내리는 비는 멎을 것 같지도 않다. 썰렁한 부엌에서 밥을 지으려고 아궁이 속에 짚을 넣고 나니 문득 오늘이 한식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파의 「한식」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한식날은 동지에서 1백5일이 지나면 온다.
이날 지난 1년 동안 쓰던 불을 다 꺼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청명부터는 새 불을 일으켜 쓴다.
따라서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일으키기까지의 하룻 동안에는 불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찬밥을 먹을 수밖에는 없다. 가뜩이나 슬픔과 울분에 잠겨 있는 동파에게는 더욱 쓰라림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런 풍습은 주 나라 때부터 있었다. 일설로는 춘추시대에 진의 개지추 (개자추)가 산에서 타 죽는 것을 문후가 서러워하여 불을 피우는 것을 금한게 시작이라고 되어 있다.
이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식·청명은 천지가 완연히 봄으로 탈바꿈하는 때에 있다.
겨울에 상한 집 안팎을 말짱히 손질하고 옷도 겨올 옷에서 봄옷으로 바뀌고 새 씨를 뿌리게 되는 봄은 모든 것의 시작을 뜻한다.
옛 사람들에게 언제나 신비스러움을 안겨주던 불까지도 새 것으로 바꾼 다는 것은 그러니까 하나의 상징적인 의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동파를 더욱 슬프게 만든 것은 찬밥보다도 성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유종원의 「치허경조서」를 보면 성묘의 풍습은 당 나라 때부터였다. 그리고 동파가 살던 때에는 성묘는 엄격히 지켜졌던 것 같다. 따라서 성묘를 못하는 동파의 슬픔은 한이 없었을 것이다.
내일은 한식.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성묘하러 온다는 80의 재일 교포도 있다. 비록 초라한 내 조상의 묘라도 찾아들 수 있는 기쁨을 담뿍 안을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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