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더, 설 곳을 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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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월호 참사로 프로야구 치어리더는 2주 넘게 휴업 중이다. 스타 치어리더 박기량(왼쪽)과 김연정이 환하게 웃으며 응원하는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중앙포토]

프로야구 인기 치어리더 박기량(23)씨는 요즘 부산시 동래구의 엔터트루커뮤니케이션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각 구단이 응원단 활동을 자제하면서 롯데 홈인 사직구장 단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사무실에서 일정을 정리하고 부족했던 안무 연습을 한다. 시간이 많이 나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프로야구 치어리더는 손이 비었다. 벌써 응원단 일을 안 한 지 2주가 넘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는 것이 온 나라가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는 분위기에 맞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고 있다. 대학 축제, 기업체의 각종 행사도 취소 또는 축소되는 분위기라 일감이 사실상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삼성 응원단 팀장인 이연주(28)씨는 “세월호 사건이 잘 수습되는 게 우선이다. 지금은 응원 활동을 하는 저희도, 따라 하는 팬분들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LG 응원단은 짬을 내 안산시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은 여느 국민과 다르지 않다.

 물론 세월호 사건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어 답답한 마음인 건 사실이다. 치어리더는 구단과 연간 계약한 이벤트 대행업체에 소속돼 있다. 박기량씨 등 소수의 유명 치어리더는 200만~250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경력이 짧은 대다수 치어리더는 12만원 내외의 일당을 번다. 응원단 일을 안 하면 당장 지갑이 빈다.

 엔터트루커뮤니케이션이 대행하는 롯데 응원단은 홈경기뿐 아니라 서울 잠실구장과 목동구장, 인천 문학구장 원정을 지원한다. 롯데는 세월호 사건 이후 홈 3연전 한 번에 잠실과 목동에서 3연전을 한 차례씩 치렀다. 일당 계약한 롯데 치어리더는 100만원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박기량씨는 “일당 받는 친구들이 많은데 걱정이다. 한 달 기준으로 반 이상을 못 뛰게 돼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월급을 받는 치어리더도 출혈이 없는 건 아니다. 월급 외에 경기마다 나오는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연주씨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빨리 재개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야구장은 조용해졌다. ‘그라운드에서 나오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경기에 몰입이 잘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응원단이 꼭 있어야 하는지 재고해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야구 응원단 일이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치어리더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목소리다. 이연주씨는 “개인적인 취향이 다르다. 경기에 집중하시는 분들은 외야나 중앙 지정석에서 보고, 응원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내야 지정석을 예매한다”면서 “응원을 좋아해 주시는 분이 많아 괜찮다”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응원단 일시 중단을 두고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낀 동료가 있느냐”고 묻자 “그런 친구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라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6일까지 응원단 운영과 앰프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9개 구단에 보냈다. 물론 7일부터 응원단 활동을 재개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연주씨는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사건이 잘 수습되길 바라며 다시 응원할 때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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