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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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 소「아시아」의「골디온」이란 도시가 있었다. 그곳 신전의 기둥에는 한 개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은 온 세계의 왕이 된다는 예언이었지만 아무도 풀지를 못했다.
이 얘기를 들은「알렉산더」대왕은 칼로 단숨에 매듭을 잘라 그것을 풀어버렸다.
예언에는 매듭을 풀면 됐지 칼을 써서는 안 된다는 단서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칼이라면 당장에도 풀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똑같이 칼을 써서 단숨에 까다로운 매듭을 푼 경우가 또 있다.
이른바『「프로크라스테즈」의 침대』의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옛「그리스」에「프로크라스테즈」라는 강도가 있었다. 그는 잡아온 사람을 뉘어봐서 그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 넘칠 만큼 다리를 잘라냈다. 거꾸로 키가 작으면 몸을 양쪽으로 잡아당겨 침대 크기에 맞추었다.
이렇게 사람에 맞춰 침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맞춰 사람 키를 맞추는 상법도 있는 것이다.
교통 소통을 원활히 하고 대서울의 모습을 보다 멋지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 총연장 23.4㎞나 되는 성산대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 당국의 구상은「골디온」의 매듭을 잘라낸「알렉산더」의 길만큼이나 멋지다.
그러나 이 성산대로에 독립문이 거치척거리니까 독립문을 옮기겠다는 것은「프로크라스테즈」의 발상과 일맥 통하는 데가 있다.
독립문은 80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성산대로를 설계할 때 얼마든지 독립문을 피해서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프로크라스테즈」가 사람을 대단치 않게 여긴 이상으로, 독립문을 대단치 않게 여긴 때문이다.
옮길 수 없다면 독립문 위에 길을 내든가 아니면 바로 옆에 입체 교차로를 만들어 독립문을 가려 놓겠다는 서울시의 대안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덕수궁 담을 헐고 대한문을 옮겨놓는 실권(?)을 가지고 있다. 남대문·동대문 밑에 지하철을 만들고 방이동의 백제초기 고적지역을「불도저」로 밀어붙인 적도 있다. 독립문이라고 못할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작년 2월에「파리」의 명소「말레」지구의「보제」광장의 가로수 2백 그루를 둘러싸고「파리」시가 두동강이 난 적이 있다.
시 당국에서는 느티나무로 바꾸려 했었다. 그러자 광장주변 시민들은 울창한 보제수의 그늘을 못 잊어 이를 반대했다.
「파리」시 당국은 이 문제를 보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독립문은 오늘도 주춤거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네 문화재관리 위원회가 한 주먹의「보제」광장 주인만큼의 힘이라도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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