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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새로운 생활모럴」의 모색을 위한 특집|신부의 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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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장 숫자로 보면 고작 서울가구의 7%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는데 우리는 이제「아파트」살림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40년 전 서울 내자동에 일본사람들이 살림하는「아파트먼트」라는 3층 짜리 큰 건물이 세워졌을 때는 그것이 아주「신기한 주택」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국사람이 바로 그런 속에서 살림을 하기 시작한 서울의 마포「아파트」가 15년 전에 세워졌을 때도「이색」이라는 말이 위에 붙어 있었다.
그 15년 사이. 요즘 길거리「택시」가『한강』하면「아파트」를 가리키게끔 변했고 TV연속극에도, 연극무대에도 양식「소파」가 놓인「아파트」거실이 예사로 옮겨진다.
더욱이 제 몇 차 경제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주택건설부문은 점차로「아파트」신축 쪽으로 무거워 짐을 누구나 실감한다.
『앞으로는 모두「아파트」에서 살겠지』-. 이런 예 진을 요즘 젊은 세대는 또 강하게 암시해 준다. 중앙일보가 금년 1월 서울의 남녀 대학생 5백 명에게『앞으로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겠느냐』고 물었을 때 놀랍게도 전체의 82%가『아파트』라고 대답했다. 특히 여대생들은 91%가「아파트」쪽을 바랐다. 약혼중이라는 어느 여대 4학년생은『호화「아파트」는 돈이 없어 형편에 닿지 않고 서민「아파트」는 살기 싫다』라는 단서를 붙여 어정쩡한 「아파트」에 안 살겠다고 대답했다.

<금욕적 노력의 대가로>
한강「아파트」촌 부근의 사립S초등교의 어느 교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 중 90%이상이 「아파트」생활이 당연한 앞으로의 우리생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애기간인 동시에 결혼 준비기간이기도 했던 3년 동안에, 각각의 직장에서 받는 보수중의 많은 부분을 떼어 착실히 저축했던 덕분에 신혼살림을 자그마한「아파트」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서로신뢰하고 사랑했으며 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의 소산인 적극적 내핍생활, 즉 그 장차 남편 쪽의 술·담배·커피 등 기호품 소비의 절대적 억제, 이따금 빈혈을 일으킬 정도의 극단으로 낮게 책정한 식비, 마찬가지 수준의 주거비·교통비를 제외한 나머지 잡비 일체의 지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거의 금욕적 노력과 장차 아내 쪽의 그와 맞먹는 노력의 대가였다』(조해일 단편『무쇠 탈』에서)-. 이 정도로 신혼 살림과「아파트」는 다급하게 우리주변으로 다가선 것이다. 젊은이들의「아파트」로 가겠다는 꿈이 때로는 무지개 같은 원망으로, 그리고 이렇게「이따금 빈혈을 일으킬 정도」의 현실적인 노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소문난 매파는『중매결혼의 70%이상이「아파트」가 신접살림에 끼워 간다』고 말할 정도다. 아들을 장가보내면 아래채 방한간을 새로 꾸미던 우리 살림이 이제는「아파트」가「장가밑천」이든,「지참금」이든, 또「부모 덕」이든 신혼부부들에게 으레 필요한 것으로 등장했다.
과연「아파트」는 이제「우리생활」로 자리잡고 있는가-. 수적으로 아직도 극소수인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고 왜 모두들「아파트」로 가려고 할까. 현재 한국에서는『「아파트」에 산다』고 말하면「괜찮은 편」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아파트」를 쫓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점에 있다.
사는 집으로 해서 깔 보임을 안 당하는 것이「아파트」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은근히「괜찮은 편」이라는 지위를 내보일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로 통하고 있다.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
전국의 젊은이들이 꿈같이 좋아하는 가수 양희은도「아파트」에 살고 있고 매일 저녁 우리를 찾아오는 기라성 같은「탤런트」들도 모두「아파트」에 살고 있다. 김창숙도, 김혜자도, 강부자도, 한진희도, 허 진도….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사장들도 그 집안에「아파트」한 채 없는 집이 없다.
「출세」의 부러움을 사는 고급관리들도「아파트」생활로 많이 옮겼다. 상공부 국장급이상 고급관리 25명중에 28%나 되는 7명이「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명예」로 존경받는 대학교수들도 이제는 단체로「아파트」이주를 하고 있다. 서울대 9백3명 교 수중에서 1백70명이「아파트」생활, 다섯 명에 한 명은「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의 경우는 1백1명 교 수중에 38명이나 된다.
지난가을부터 올 2월초까지 결혼식을 올린 어느 일류회사 사원 8명중 6명이「아파트」살림.

<서울대 교수 170명>
그것은 또「우리」를 그려내는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저 뜨거운 남해바닷가를 그렸던 김승옥씨는 벌써 10년 넘게「아파트」에서 원고를 쓰고 있으며 오늘의 젊은이들을 가장 가깝다고 열광시켰던 최인호씨도 오랫동안「아파트」생활을 하면서「아파트」방을 잘못 찾아 들어가는「코미디」까지 써냈다.『장길 산』의 황석영씨도 원고료 수입이 오르자「아파트」로 옮겼다. 우리의 농촌을 가장「리얼」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평을 듣는 하근찬씨도 현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모두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 그래서 7%밖에 안 된다는「아파트」사람들이 그 몇십 배의 무게로 우리에게 펼쳐진 것.
입식생활의 서양사람들이 산업화 도시생활로 접어들면서 함께 많이 살기 위해 만들어 낸 실용의「아파트」가 한국에 밀려든 30여 년간의 양 풍속에서 정착의 주춧돌을 놓은 것임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의「체면」이 예외 없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이 그렇게 돼 버린 것이다.「맨션」부터 짓기 시작해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고 서구적인 생활을 선망하는 풍조 때문이라는 반성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이런「체면치레」의 뒤 안에는 실제로 오늘의 생활에 필요한 조건들을 확실히「아파트」는 갖고 있다.
「아파트」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첫손에 꼽는 이유가『편하다』는 것. 부부만 따로 살아야 하는 공간배치로 해서『마음도 편하고 생활도 편리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에겐 거의 절대적이다. D보험회사 여성 외무사원 중에서 맞벌이 부부인 경우 70%가「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K여고 10여명 기혼 여교사 중에서 8명이「아파트」생활이다.

<체면치레도 크게 작용>
요즘 흔히「아파트」를 가리켜「여성왕국」이라고 꼬집는 것도 여기에 의미가 있다. 시집살이에서 벗어나는 길이 곧「아파트」로 통한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집을 비우고「외출」을 할 수 있다는 자유스러움 때문에, 또 연탄걱정·비 샐 걱정·추위걱정을 좀 덜할 수 있다는 편한 점이 특히 안살림을 맡아 하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해서 오늘의 우리 도시 소시민들에게 있어서「아파트」살림이라는 것이「시위와 위안」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고, 그 급속한 정착의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덧붙여 더욱 뿌리 깊게 숨어 있는 이유는, 그것은 틀림없이 한국의 오늘 사회에서 일정한 틀, 똑같은 상자 속「아파트」라는 형식 속에 파묻혀 자신을 숨기려는 「편리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익명 성」속에서 자신의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을 감추려는 수단으로서「아파트」가 필요했을 것도 같으며 그래서 더욱 그것이 서민들에겐「고급」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여튼「아파트」살림은 이제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패턴」의 생활은 그런 경험도, 전통도 없었던 우리에겐 커다란 도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새로운 생활「모럴」을 이제부터 모색하며 또 쌓아 가야 할 것이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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