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이라크 민병대' 150여 部族 새 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9면

"중앙의 별도 명령이 없더라도 미군과 영국군에 맞서 싸우라." 지난달 25일 이라크 국영방송을 통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서의 골자다.

무하마드 알사하프 공보장관이 대독한 성명서는 이라크 내 각 부족에게 "이슬람과 국가를 위해 성전을 수행해 침략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것"을 촉구했다.

지상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영군에게는 섬뜩한 얘기다. 미.영군은 공습을 통해 이라크 군사력을 상당 부분 파괴하고 있지만 지상전이 벌어지는 남부에서는 복병(伏兵)에 의해 사상자가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정규군보다 평복을 입은 민병대의 공격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게릴라전을 주도하는 세력이 지방 부족에 속한 민병대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에는 아직도 봉건적 전통이 지배하는 중동지역에서 부족장의 권위는 대통령보다 강력하다. 각 부족은 무장을 하고 있고 군사행동은 정부의 명령보다는 부족장의 결정에 따라 수행된다.

이라크에는 크게 분류해 약 1백50개의 주요 부족이 있다. 이들은 다시 시아파냐 수니파냐에 따라 종파별로, 그리고 아랍.쿠르드.아시리야.투르크멘 등 민족별로 2천여개의 보다 작은 집단으로 갈라진다.

이러한 전통을 잘 아는 후세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주요 부족장을 집권 바트당의 현지 지도자로 임명하고 경찰권과 사법권을 부여하거나 돈.토지.자동차 등을 제공하며 이들의 충성심을 다져왔다.

부족들은 기본적으로 후세인 정권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으나 후세인이 두려워 복종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의 분석이다. 티크리트 출신의 후세인 가문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면서 소외당한 부족들의 반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배신에 대한 보복도 두려워 한다. 이라크인들은 1991년 제1차 걸프전 당시 봉기했던 남부지역 부족들이 무참하게 살육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예상과 달리 현재까지는 씨족과 부족장들이 후세인 정권에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중동 전문가는 이라크에 산재하는 부족들이 이번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의 패색이 짙어지면 미련없이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인권단체 이라크재단의 로버트 라빌 기획담당이사는 "많은 부족의 존재가 후세인의 최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