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광화문의 두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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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식스 센스를 지니지 않아도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래된 사람’이다.) 사직단 근처에 살다 보니 ‘특별한’ 두 사람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한 사람은 앉아서, 한 사람은 서서 나를 맞는다. 그들 뒤로 보이는 글자가 제법 어울린다. 빛[光]이 된[化] 두 사람. 몇백 년 전에 태어났지만 오늘도 살아서 말한다.

 햇빛 아래서 사진 찍는 중학생을 보니 다가가 권하고 싶다. “마음의 셔터도 열어봐. 손만 움직이지 말고 귀도 기울인다면 기억이 더 빛을 발할 테니까.” 그분들의 영혼마저 인화한다면 리더십 책 몇 권 읽는 효과는 사뿐히 넘어설 듯하다.

 세종대왕은 ‘공감능력’ 지존이다. 단계별로 살펴보자. 임금 중에는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간신들은 이익 나는 망으로 걸러서 듣기 좋은 말만 고한다. 안일한 전문가들(?)에 둘러싸이면 눈 뜨고도 못 보고, 귀 있어도 못 듣는다. 세종은 달랐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왜 전달이 안 되는지에 의문을 품었다. 드디어 찾아낸 쇠못. “말은 쉬운데 글이 어렵구나.” 그러니 백성이 얼마나 갑갑할까. 애달픈 사연도 ‘언문불일치’라는 오랏줄에 묶였을 테지. 엉뚱하게 세종이 ‘전 국민 한문교육 강화’라는 특단의 정책을 폈다면?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은 쉽게 통할 수 있는 글자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국운이 걸린 야심 찬 기획이었다. 끈질긴 ‘아니 되옵니다’를 이겨내고 마침내 스물여덟 자를 창조해낸다. 고맙지 않은가. 지금 나는 닿소리 홀소리 섞어가며 편안하게 소통 중이다.

 조금만 옆으로 걸어가자. 나라를 구한 장군이 수없이 많은데 이순신 장군이 유독 광화문을 지키게 된 배경은 무얼까. 나는 그것을 ‘기록의 힘’으로 본다. 여느 장군들과 달리 그는 전쟁 중에도 꼼꼼히 일기를 쓴 사람이다. 일기가 무언가. 반성과 희망을 심는 거다. 그는 위기 앞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열두 척의 배로 상징되는 리더십의 요체는 모름지기 희망과 희생이었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 자꾸 일어난다. 그러므로 ‘상상’만 하지 말고 ‘예상’도 해야겠다. 좋은 상상은 현실로 만들고 나쁜 예상은 대비해야겠다. 광화문의 임금(1397~1450)은 권력을 창의적으로 썼고, 장군(1545~1598)은 소임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똑같이 53년 동안 지상에 머물렀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긴 삶을 살며 조언을 건넬 자격이 충분히 있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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