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의 중국 고도자 소유국으로|신안 앞 바다 해저 유물 발굴의 종합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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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산과 들과 바다 속을 가릴 것 없이 우리 강산에 숨은 문화재가 아직도 수없이 버글거리는 풍요한 고장임을 우리는 올해 한번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지난 1월 신안군 지도면 동전리의 어부 박창식 등이 신고해 온 중국원시대의 청자 화병 등 일련의 유물 6점을 신호로 해서 3월에는 저 훌륭한 선산의 삼국시대 금동삼존불 3구가 출토되어 광복 후 최대 발견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고, 이어서 양평의 논바닥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거듭 학계의 주목을 끌었었다.

<해군 지원 큰 도움>
9월 들어서 도굴자들의 손으로 또 그 신안 앞 바다의 중국 말·원시대 유물 1백수십 점이 불법 인양됨으로써 일당이 검거 된 것을 계기로 우리 학계는 드디어 해중 고고학의 첫 발걸음인 해저 조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 해저 조사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비와 해저 활동이 고도로 훈련된 우리 해군 부대의 투입을 보게 되었고, 이로써 이 조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10월과 11월에 걸친 두 차례의 이 해저 조사 작업에서 11월26일 현재 이미 2천 점에 육박하는 송·원 시대 문화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 조사 현장인 신안군 지도면 방축리 앞 바다는 우리 황해 바다의 특성대로 해수간만의 차가 매우 크고 물살이 빠른 해협일 뿐더러 황해의 독특한 펄 흙이 수심 25m 내외의 해저에 30cm 내외나 깔려 있어서 건드리지 않아도 탁수 때문에 해저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세계다,
이 겨울철 해수의 냉한과 더불어 여기에 투입된 해군 사병의 노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 정예 해군이 아니었더라면 엄두도 못 낼 지난의 조사였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용천 청자 대부분>
이번 조사 초기에는 일련의 고도자기로 미루어 보아서 이들 유물은 대체로 남송시대 것이 섞여 있는 원대의 도자 무역선의 유물로 판단되었고, 이것은 아마도 양자강 하구를 떠나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서 내해로 대피하다가 침몰된 것으로 짐작을 했었다.
그후 2차의 조사를 거쳐서 인양된 유물의 수는 근 2천 점에 이르렀으며 그 내용도 시시각각으로 다양해짐으로써 우선 배에 실었던 도자기류에는 북부 중국 황하 유역의 여러 사기가마에서 구워진 작품은 별로 썩여 있지 않았다는 점과 남부 중국 양자강 유역 일대의 생산품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원시대의 용천요의 청자류가 그 태반을 차지했음을 알게 되었다.
즉 경덕진요계의 육백자, 수무요계의 백유철회문도기, 건요계의 천목류, 균요계로 보여지는 해서유계도기 흑회백토분장도기 흑유도기 녹유도기갈유세문도기 반홍청자 등이 고루 섞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한국 내 출토의 중국 도자군과는 유형이 다르며 오히려 1975년 동경 국립 박물관에서 기획했던 일본 출토 중국 도자전이 보여준 유형에 매우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청화백자 안나와>
따라서 당시 이미 정교한 고려청자를 양산하던 고려가 굳이 원대 도자기를 다량으로 수입할 필요가 없었던 그간의 사정과 더불어 대일 무역선이라는 심중을 한층 굳히게 되었다. 다만 14세기 중엽에는 이미 개발되었던 원나라의 청화백자가 이들 유물 중에 아직 한 점도 없는 점이 궁금하다. 이 유물 중에서 청화백자가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인지 이후의 조사에 기대되는 바가 크며 이것은 이 배의 침몰 연대를 한층 분명히 해줄 수 있는 열쇠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2차 조사에서 인양된 유물 중에는 선상 주방용이었을 것으로 상정되는 금속제 그릇들과 돌매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홍칠로 된 소위 조칠 공예품 단편들과 은기류, 그 시대의 방조로 생각되는 청동제 의기류 석연 등이 섞여 나오는 것은 이 배가 단지 도자기 무역뿐만 아니라 그 시대 중국의 다양한 공예품도 그 대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일정한 중량과 규격으로 추출된 은정 묶음 (은괴)의 인양은 당시에 국제 통화라고도 이를 수 있는 유물이었으며 당시대의 개원통보로 비롯되어서 남송의 건염통보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금화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해서 이것이 남송 이후의 무역선임을 분명히 했으며 그것도 14세기 원대 도자기가 그 대종을 이루고 있는 점으로 해서 거의 원대도 후반기에 기우는 무역선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수천 점의 공예품들이 지니는 상호 관계 등을 고찰할 때 동양 공예사 연구에 끼칠 수 있는 희유한 일대 보고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 국립 중앙박물관이 이미 수장하고 있는 1천6백여점의 한국 출토 중국 고도자와 더불어 우리는 세계 유수의 중국 고도자 소유국이 될 것이다.

<패각 제거가 관건>
현재까지 인양된 유물들 특히 도자기들은 수백년간의 바다속 잠을 깨어난 물건들이므로그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현재 수조 속에서 염분 (소금)을 완전히 빼내는 과정을 처리하고 있다.
그 다음 과정은 우리 물리학자·화학자 등으로 구성된 과학자 진용이 도자기에 붙은 잡물과 패조류 등을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산성 화학 약품의 종류 및 그 농도 반응을 조심스럽게 시험하고 있다. 이 시험에서 얻은 가장 안전한 처방에 따라서 우리는 지금 그 많은 보물들을 거의 안전하게 소생시킬 수 있는 성산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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