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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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학은 어딘지 고고한 선비를 연상하게 한다. 눈처럼 흰 몸매하며,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먼 하늘을 바라보는 자태하며, 강변이나 청송 위에 노니는 탈속의 생태하며…,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선망하는 선인의 자세이기도 하다.
학수천세라는 말이 있다. 장수를 경하하는 말이다. 학이 천년을 살 듯, 때묻지 않은 고결의 자세로 장수를 비는 하나의 축언이기도하다.
요즘은 낯선 말이 돼 버렸지만 옛 사람들은 어른의 서신을 학서라고도 했다. 때로는 학두서로 불리는 이 말은 선비들 사이에 쓰이는 존칭어의 하나다. 학발은 노인의 백발을 이른 말이다. 학가라고 하면 황태자의 수레를 뜻한다.
옛 시인들의 문구에도 학은 즐겨 등장한다. 「학립계장」과 같은 말은 닭들의 무리 가운데 홀로 학이 서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출중한 인물에 대한 시적 표현인 것이다.
학은 조류학에서는 두루미 목에 포함된다. 「두루미 목」은 학명으로는 Alectorides.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알렉토」 여신에게서 비롯된 이름이다. 서양인들도 학에 대한 신비감은 동양인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학은 두루미 목의 두루미과에 속하는 새로, 특히 「아시아」에서 사는 두루미로는 「두루미」·「흑두루미」·「재두루미」 등이 있다.
두루미는 그 날개의 폭이 60cm도 넘으며 발목의 길이도 30cm나 된다.
이들은 갈대와 왕골 등이 무성한 습지에 산다. 암수가 함께 사는 일도 있지만, 흔히는 독신 생활을 한다. 그러나 하늘을 날 때는 무리를 지어 V자형의 줄을 지어간다.
10월말이면 우리 나라의 하늘에서도 그런 V자형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중·소 국경 지대인 「우수리」 강변이나 만주, 더 멀리는 「시베리아」지방에서 살며 겨울이 가까워지면 우리 나라로 날아온다.
대로는 일본으로 가는 무리들도 있다. 그래서 이듬해 4월이면 다시 북녘으로 돌아간다.「학수천년」이라고 하지만 실제의 수명은 60년 내지 70년. 물론 천년보다는 짧지만 조류의 수명 치고는 상당히 긴 편이다. 이들의 식성은 물고기와 부드러운 식물 잎사귀. 필경 이런 식성이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
최근 인천의 해안에 12마리의 두루미 떼가 나타났다.
TBC-TV의 「다큐멘터리」는 3백mm 망원 「렌즈」로 그 의젓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류 학자들에 따르면 지금 이 지상에는 두루미가 불과 4백여 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 가운데 12마리면 상당한 진객이다. 혼탁한 자연 속에서도 그래도 우리를 찾아준 것은 어딘지 자연에의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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