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상대 동일한 내용의 배상소송에 대법원서 상반된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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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일한 회사를 피고로 하고 사건의 성격이 똑같은 10건의 사건에서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판례 변경 절차에 따르지 않고 상반된 두개의 판례를 내놓아 혼선을 빚고 있다. 대법원 민사2부는 24일『회사의 출납계장이 자기 회사의 인장을 위조, 허위 어음 배서행위를 해 제3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회사는 이들에게 사용자 배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 최상길씨(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138의7)와 김국원씨(부산진구 양정동397의1)가 각기 신발「메이커」인 진양화학 공업 주식회사(대표 한희석·양규모)를 상대로 낸 2개의 손해배상청구와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이 불과 1년반전에 진양화학을 상대로 낸 똑같은 성질의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에서 피해자 보호 원칙을 내세워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한 대법원 자체의 판례를 전원 합의체에 의한 판결을 거치지 않고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판례에서 피용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발생에서 제3자(피해자)의 보호보다는 사용자(기업)의 보호를 우선시켰으며 특히『대법원의 판례가 처분문서이기는 하지만 그 판결은 어디까지나 당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의사표시에 불과하지 반드시 다른 재판부가 그 내용을 믿어야하는 것은 아니다』는 대법원판례의 기속력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원고 최씨와 김씨는 각자 진양화학대표 한희석씨 명의로 배서된 약속어음을 갖고 있다가 이것이 진양화학 전 출납계장 구자승씨(33)가 위조, 배서한 것임이 밝혀져 진양화학을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진양의 현금출납 및 어음수납업무를 담당한 구씨는 71년8월부터 11월10일 사이 평소 회사와 두터운 거래관계를 맺고 있던 염직가공업자 조정수씨(41·삼영염직 대표)로부터『거래선에서 받은 약속어음에 신용도가 높은 진양화학의 배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조씨의 신용을 믿은 나머지 회사에 알리지 않고 회사 직인을 위조, 총액면가 7천7백80만원의 약속어음 46장에 진양화학이 지급 보증한다는 배서를 해주었던 것.
염직업자 조씨는 이 어음을 최상길·김국원·강신문·전봉국·신재걸·이원오씨 등 10명에게 주고 할인, 현금과 교환했는데 사업에 실패해 부도를 내고 구씨와 함께 유가증권 위조 및 동행사·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각기 징역 8월과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어음을 소지하고 있던 10명은 각자 진양화학을 상대로 약속어음금 청구 혹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5명은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는데 상반된 판례 때문에 2명은 승소하고 3명은 패소했다.
소송과정을 통해 원고들은 ▲조씨의 약속어음을 현금과 교환해 준 것은 신용도가 높은 진양화학의 배서가 있었기 때문이며 ▲위조 배서를 해준 구씨는 어음수납 업무를 담당하는 출납계장으로 소지자들에게 배서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 ▲따라서 원고가 입은 손해는 피고회사의 피용자인 구씨의 배서 행위에 기인하며 ▲배서 행위는 객관적으로 구씨의 본래 사무 내지는 그와 관련되는 사무집행에 관한 것이므로 진양화학은 사용주로서 배상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양화학측은 ▲회사의 인감은 법원에 등록돼 있고 각 거래은행에 신고돼 있는데 원고들이 거액의 약속어음을 받으면서 그 배서의 진부여부를 확인 안한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어음의 배서 행위는 회사부사장의 전결업무로 구씨의 업무가 아니며 구씨는 자기의 직무 집행 범위를 넘어 권한 이외의 불법 행위를 했으니 사용자가 배상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75년6월24일 전봉국씨(부산시 동구 범천1동1747)의 소송에 대해『구씨가 출납계장으로 금전출납과 어음수납 및 추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비교적 용이하게 회사 대표자의 인장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 구씨의 어음배서위조행위는 외형적·객관적으로 직무범위에 속하며 원고의 손해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 원고 전씨의 승소를 확정했고 이 판례에 따라 이원오씨도 승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4일자 판례에서는『구씨의 사무범위는 완성된 어음 등 유가증권이나 현금을 기계적으로 교부하고 영수증을 받은 일에 그치며 어음의 작성이나 배서사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문제가 된 배서위조행위는 외형적·객관적으로 사무집행에 관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 정반대의 판례를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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