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5000원 소송' 3만5000원에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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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금액 2000만원 이하의 사건을 다루는 소액 민사사건 법정은 갖가지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곳이다. 사소한 금전 분쟁을 타협보다 무조건 법에 호소하려는 심리가 팽배해진 세태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박형명 부장판사는 "소액사건 법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서민의 애환과 미묘한 심리가 뒤엉킨 생생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이웃 간 감정싸움"=지난해 제기된 소액 소송은 모두 93만4473건. 이 중 금융기관이 일반인을 상대로 카드 대금.대출금 등을 갚으라는 취지의 대금 청구 소송이 약 7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개인 간의 보증금.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법정. 주부 김모(48)씨가 세 벌의 겨울 점퍼를 들어보이며 "판사님! 유명 브랜드 옷인데 세탁을 잘못해 얼룩이 졌어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네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9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김씨가 증거물로 점퍼들을 직접 들고 나왔다. 이 사건은 "세탁소 측은 25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조정으로 해결됐다.

건강식품을 둘러싼 갈등도 단골 메뉴다. 50만원어치의 건강식품을 산 뒤 잔금 9만5000원을 내지 않아 매매 대금 청구 소송을 당한 최모(74.여)씨. 지난달 열린 재판에서 최씨는 "건강식품이 약효가 없었다.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이에 판사는 "돈을 갚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3만5000원을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득했다. 최씨는 법정에서 건강식품 판매업자에게 직접 돈을 지급, 분쟁을 마무리했다.

◆"배보다 배꼽이 커"=건축업자 김모(51)씨는 지난해 8월 한 빌딩의 새시 공사를 했다가 "공사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공사 대금 20만원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그러나 판사로부터 공사현장을 감정하는 데 100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고 소송을 포기했다. 송달료.인지대 등에 들어간 5만원만 날렸다. "내 논문을 표절했다"며 선배를 상대로 1만원의 청구소송을 낸 경우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김유범 판사는 "실익이 없는데도 자존심 싸움에서 소송을 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소액사건=소송 액수가 큰 다른 민사 사건과 동일하게 '소장 접수→재판→조정 혹은 판결'의 절차를 거친다. 재판 한 번 만에 조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서너 번의 재판이 열린다. 기간은 보통 6개월이며, 짧게는 2~3개월 만에 끝난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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