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엔 없는 사자가 영국왕의 상징이 된 까닭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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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두연

1950년부터 출판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첫 책은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다. 2차대전 중 독일의 런던 공습을 피해 시골 친척 교수님댁으로 가게 된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는 옷장을 통해 마법의 나라 나니아로 간다. 사악한 하얀 마녀 때문에 겨울만 계속되는 마법의 나라에서 아이들은 사자 아슬란의 도움으로 마녀를 물리친다. 그리고 각각 왕과 여왕이 되어 나니아를 다스리다가 다시 옷장을 통해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어릴 적 이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어른이 된 지금도 커다란 옷장만 보면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니아 이야기를 읽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서구 사회에서는 동물의 왕이 사자일까? 왕의 별명이나 문장에 사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서구 문학에서 사자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왜일까? 유럽에는 원래 사자가 살지도 않는데 이렇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사자의 서식지는 아프리카·서남아시아·인도 등이다. 고대에도 지중해를 넘어 바로 북부 아프리카를 접하는 남부 유럽인들은 사자를 알고 있었지만, 사자를 모르는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에게 숲에서 흔히 만나는 동물의 왕은 바로 곰이었다. 곰은 유럽 대륙의 원주민인 켈트인과 북유럽의 게르만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곰을 가문의 시조로 여겨 왕가의 문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전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곰의 피를 마시고 몸에 바르기도 했다. 숲의 지배자인 곰은 고대 유럽에서 신적인 동물로 숭배받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할 수 있어 더욱 그랬다.

이렇게 오래된 유럽의 곰 숭배 전통은 기독교의 포교를 방해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4세기지만, 유럽 전체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10세기 정도다. 그동안 기독교 교회는 곰을 그리스도의 경쟁자로 여기며 곰과의 전쟁을 치렀다. 심지어 카롤루스 대제 시절에는 곰을 학살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실제로 볼 수 없기에 우상숭배에 빠질 위험이 적은 사자를 동물의 왕 자리에 앉혔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성경의 무대였던 북부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자 문화가 유럽에 전해지며, 12세기 무렵 사자는 신앙의 수호자이자 용감한 기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사자를 상징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기사는 3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사자심왕 리처드이다. 그의 문장은 세 마리 사자였다. 이후 현재까지 영국 왕실은 물론, 잉글랜드 축구팀도 사자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13세기에 이르러 사자는 유럽 전역에서 백수의 왕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중세의 『여우 이야기』를 비롯하여 현대 문학에까지 사자는 왕이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도 배신한 에드먼드의 죄를 대신해 죽은 후 부활하는 사자 아슬란(터키어로 ’사자‘란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상징한다.

무신론자였던 저자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을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간의 뿌리 깊은 무의식은 아직도 곰의 신통력을 잊지 못하나보다. 어두움이 무서운 어린 아이들은 사자가 아닌 곰 인형을 안고 잠자리에 드니 말이다.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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