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중남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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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장사는 않고 현지인들과「골프」만 쳤습니다』-. 「멕시코」에 진출, 연간 수백만「달러」의 거액 실적을 올리고 있는 어느 일본인 상사 지배인의 말이다.
당장의 상리는 뒷전으로 밀고 현지인과의 인간관계와 신용 얻기에 주력, 이제야 확고한 뿌리를 박게 됐다는 경험담이다.
중남미 시장 진출의 폐쇄성과 어려움을 말해 주면서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와 인내만이 진출 성공의 요체임을 일러주고 있다. 현재 「멕시코」에만 일본인상사(합작법인)가 1백여 개 있으나 우리기업 진출은 하나도 없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각국에 작년부터 일부 종합상사를 비롯한 국내기업의 지사가 설치됐었으나 현재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거두지 못해 신규진출은 커녕 속속 철수할 준비에 바쁜 실정이다. 중남미 시장에 대한 인식착오 내지는 진출자세에 어딘가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제국의 산업화· 공업화 과정은 우리와 비슷한 단계로서 많은 경우 경합관계에 있다.
풍부한 천혜의 자원덕분으로 1인당 국민소득(8백「달러」선)은 우리보다 다소 앞서 있으나 공업화의 진도는 우리보다 뒤 처진 개발도상국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1∼2개의 단순한 1차 산품에 의존하는 경제로서 「브라질」의 「코피」, 「베네쉘라」의 석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의 소맥· 우육· 양모, 「칠레」의 구리·초석 등이 대표적 예다.
또 연간 50∼60%의 고율 「인플레」와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 빈부의 격차 등 후진국적 경제현상이 두드러진 나라들이다.
따라서 개도국의 공통현상인 자본재수입에 크게 역점을 두는 반면 원료나 소비재수입에는 예외없이 엄격한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한국의 수출품은 현재 대부분 2백%의 최고관세와 30%내외의 국내세를 지불해야 하며 수입금액의 1백%를 1년간 무이자로 적립한다든지, 국제입찰에서의 내외업자의 불평등 조건· 역내 LAFTA(중남미자유무역연합)결성 등 배타적 「섹티즘」은 이 지역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남미제국에서 점차 외국인 투자제한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측면이다.
누적된 외채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외국으로부터의 다변적인 경제협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에 복귀한 것이다.
이 문제에 가장 강경한 자세를 보인 나라는 「칠레」. 「안데스」조약(ANCOM)체결국의 하나인 「칠레」는 최근 역내 관세 및 산업분산에 관한 효력연장 의정서에 서명을 거부, 외국인 투자제한규정의 개정을 요구했다. 결국 「칠레」의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져 역내 외국인기업의 연간 대 본국 이윤송금을 종전의 14%에서 20%로 인상하고 재투자범위를 5%에서 7%까지 허용케 됐는데 이 정도의 완화조치도 현지에선 큰「이슈」로 취급되고 있다.
중남미는 풍부한 부존자원에 무진장한 개발가능성을 지닌 지역으로 신규 시장개척의 호적지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종래와 같은 고식적·단기적 접근으로는 쉽게 문을 열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번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남미 제국을 순방했던 태완선 대한상의회장도 『우리 기업들이 당장의 손실에 지나치게 집착, 내일의 보다 큰 결실을 위해 인내하고 투자하는 정신이 결핍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우선 현지에 뿌리를 박기 위해서는 자본·기술을 대동한 현지 합작투자가 가장 첩경이다. 현지 외국어에 정통한 「세일즈맨」을 양성, 시장정보를 조기 입수하고 그들의 소량주문· 연불 수출조건 등에 성실히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철강제품· 「시멘트」등 일부 품목에 과다하게 의존할게 아니라 수출확대 가능 및 유망품목을 기민하게 발굴하는 한편 형식적인 국제입찰 참가를 지양, 이면계약「채늘」에 대한 인간적「루트」를 다양하게 개척함이 아울러 소망된다. 【상파울루=지원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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