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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 열흘…133만 도시가 폐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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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민들은 인사말 대신 '적이다(enemy)'라고 외쳤다. 열흘 만에 바스라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 종군기자인 올가 크레이그가 30일 영국군의 포위공격에 저항하고 있는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 시가지로 직접 진입해 시내의 참상과 주민들의 공포를 생생히 전했다.

크레이그 기자는 "연합군의 공습과 포격에 전기와 수도가 끊긴 바스라에서는 연일 수천명의 난민들이 도시를 탈출하고 있고, 남은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면서 "인구 1백33만명의 도시가 폐허로 변했다"고 전했다. 아래는 르포 요약.

기자는 사진기자와 함께 지프를 몰고 영국군의 포위선인 바스라 외곽 다리를 건너 시내로 진입했다. 4마일 남짓(약 6.4㎞) 달렸을 때 포격에 돌무더기로 변한 주택가가 눈에 들어 왔다.

길 모퉁이에서 시민 몇명을 발견하고 다가가려 하자 청년 한 명이 주먹을 치켜들며 영어로 "적이다"고 소리쳐 적대감을 드러냈다.

곁에 있던 노인이 몇마디 타이르는데도 그 청년은 기자를 쏘아보는 눈길만은 거두지 않았다. 지난 밤 미군의 공습으로 바스라 민병대 건물이 파괴돼 2백명이 숨졌기 때문에 시민들의 경계심이 최고조에 이른 것 같았다.

좀더 중심가로 들어서자 올리브색 군복을 입은 이라크군 네 명이 총기를 무릎 근처에 내려놓은 채 토마토를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서방 여기자의 출현에 놀라 다가왔다. 우리는 최대한 속도를 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른 길목에서는 러시아제 T-55 탱크 다섯대가 폭격에 부서져 버려진 채 아이들의 놀이터가 돼 있었다. 열 네살 소년 라오술은 "엄마는 지난해 11월에 죽고 아빠는 이라크군에 징집돼 지난달 27일 새벽 집을 떠났다"면서 "형과 집 지하실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군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바스라 난민 라드 세아드(51)는 "이라크 민병대가 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그들은 침략자들을 향해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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