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던져 준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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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26면

저자: 인재진 출판사: 마음의숲 가격: 1만2000원

‘찌글찌글’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지글지글’ ‘징글징글’ ‘쪼글쪼글’이라는 말이 연상됐다. 사전을 찾아보니 대략 그런 의미였다.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이 책은 “그렇게 굴곡 많게 찌글찌글한 것이 바로 재즈”라고 생각하는 인재진(49)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이 들려주는 ‘성공의 무대를 만든 위대한 실패의 기록들’이다. 어쭙잖게 힐링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아시아 최고의 재즈 페스티벌’을 만든 ‘성공 비법’으로 도배하지도 않았다. 대신 “심심허믄 내 얘기 한번 들어볼텨?” 하는 동네 충청도 형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다.

그의 삶이 처음부터 술술 풀렸던 것은 아니었다. “가난할 때는 눈물마저 모자랐”던 고은 시인의 시구가 현실이었던 적도 많았다. 통장에 1만원이 없어 출금을 못할 때도 있었다.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전공보다 밴드부 생활을 더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공연 비즈니스계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운명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흥행업계 마이너스의 손’ ‘민폐 마케팅의 귀재’ ‘희귀음반 전문 제작자’로 불리던 그의 소망은 번듯한 재즈 페스티벌의 디렉터가 되어 70세까지 일하는 것이었다. 우연히 참가하게 된 핀란드 ‘포리 재즈 페스티벌’은 그에게 무대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음악 속에서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했다. 그 결과 비가 오면 물이 차던 가평 자라섬은 뮤지션과 팬들이 편하게 즐기며 어울리는 공간이 됐다.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도 그런 그와 평생을 약속한 음악적 동지이자 아내가 됐다. 자기 회사에서 축제를 꾸려보고 싶다는 모 신문사의 압력을 온몸으로 막아낸 담당 공무원의 호기로움, 자부심으로 축제를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 ‘자라지기’들의 성실함, 음악으로 맺은 재즈 뮤지션들의 의리가 더해져 자라섬 축제는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공연은 바로 우리 삶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 나름대로 관객을 모으며, 인생이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새로운 관객을 맞이한다.”

눙치듯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음악 속에서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짠다. 축제가 열리는 10월 초가 되면 저녁 6시쯤 해가 지는데 그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그 배경과 어울리는 아티스트와 음악을 찾는 것이다. 영원히 멈춰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장면을 연출해야 관객이 이듬해에 다시 찾기 때문이다.

공연 기획자를 꿈꾸는 청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축제를 기획하고 싶다면 함께 일하게 될 혹은 일하고 있는 지역 공무원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 묻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푸념만 하지 말고 ‘민간경상보조’ ‘투융자심사’ ‘광특예산’ ‘순세계잉여금’ 같은 용어부터 공부하라고 일갈한다. ‘오로지 규정에 맞게 예산을 집행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공무원의 입장에서 일을 생각해보라는 조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메일이 하나 왔다. 제목이 ‘[자라섬재즈]보도자료-올해 날짜는 10월 3~5일’이었다. 이러다 보면 70세가 되어도 여전히 빵떡모자를 쓰고 자라섬을 돌아다니는 그를 정말 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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