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정신에 담아야 할 통일준비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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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30면

통일에 관한 헌법정신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은 먼저 제3조에서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선언했다. 그 다음 제4조에서 통일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헌법은 분명하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여기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바로 인권 존중, 권력 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 선거제도, 사유재산·시장경제, 사법권 독립이 그 핵심 요소다. 이에 어긋나는 통일은 헌법이 상정하고 있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헌법 전문(前文)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이 있다.

이처럼 통일의 추진과 그 준비는 행정부·입법부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지향점이자 국민 모두의 의무다. 이러한 헌법정신을 요약하면 ‘통일 준비 체제의 수립’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대한민국은 통일 준비 체제이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일 준비 체제의 수립이라는 헌법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한 ‘통일준비기본법’이 진작 마련돼 있었어야 했다. 그동안의 통일정책이나 통일방안이 국민의 대의기관을 통해 법제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25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설치 방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지만 통일 과정은 마라톤과도 같기에 분단 70년을 앞두고 그나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인지도 모른다.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이제라도 통준위를 설치하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통준위의 근거 법령으로 3월 21일 대통령령 제25265호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다. 그런데 통준위를 대통령령에 따라 설치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원래 대통령령이란 법률에서 위임 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율하는 법 형식이다. 대통령령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통준위의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통일 준비는 국가의 의무이기에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야를 포함해 범국민·범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법률을 통해 설치하는 것이 대의제 원칙에도 맞다. 국회가 만든 법률로 격상시켜야 한다. 차제에 헌법정신에 따라 통일 준비 체제 수립을 위한 ‘통일준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북한인권법’도 통일 준비의 일환이라면 통일준비기본법의 한 장(章)으로 편입하면 된다.

통준위의 출범과 관련해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및 정부조직법상 행정 각 부인 통일부와 기능이 중복된다거나 상호관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도 법률 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사회보장기본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사회보장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국무총리가 위원장,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장관이 부위원장이다. 통일준비기본법에서 통일 준비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범국가·범민간의 위원회로 통준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통일부 장관과 민간 위원이 부위원장을 맡는 방식으로 규정하면 된다. 통일부가 별도로 있음에도 상위 개념의 통준위를 법률로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헌법 제92조는 평통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평통은 법률에 의해 둘 수도 안 둘 수도 있다. 헌법상 필수기관이 아니다. 평통은 법률에 의한 임의기구다. 헌법상 국가원로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필수적으로 두도록 한 것과 다르다. 따라서 통일정책에 관한 자문을 위한 평통과 통일 준비 체제 수립을 위한 통준위가 별도로 있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통일은 현실 여건과 미래 비전을 함께 고려하고 세계 질서를 내다보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지난(至難)한 과업이다. 우리가 한반도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국제·정치적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 냉엄한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종국에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 세계 평화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전략과 비전을 갖추고, 정치(精緻)하게 준비하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통준위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준위는 통일 준비 체제 수립이라는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통일준비기본법이라는 보다 큰 그릇에 담아야 한다.



황정근 서울대 법학과 졸업.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을 지냈다. 사단법인 ‘새조위’(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 공동대표. 저서 『선거부정방지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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