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77 → 476 → 474 → 475 … 다시 476명으로 바꾼 해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침몰한 세월호의 구조와 수사를 담당한 해양경찰의 부실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사고 초기부터 줄곧 세월호에 몇 명이 탔는지를 파악하지 못해서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의 말만 듣고 처음엔 477명이라고 했다가 476, 474명 등으로 바꿨다. 다시 선사와 함께 탑승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를 보며 수를 헤아린 뒤 475명으로 수정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18일 밤 10시에는 다시 476명으로 번복했다.

 이러면서 실종자 수를 272명(18일 새벽 1시)에서 274명으로 2명 늘려 발표했다. 구조자는 179명에서 5명이 줄었다. 처음부터 승객과 승무원이 각각 몇 명 구조됐는지도 헤아리지 못했다. 사고 첫날 승무원들은 탑승한 29명 중 17명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추가 구조자가 없었는데도 이틀 뒤인 18일 전체의 79%인 23명으로 바뀌었다. 일부 학생은 섣불리 사망했다고 밝혔다가 정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 실종자 가족은 “슬픔에 빠진 가족을 두 번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 구조 요청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전남소방본부 기록에는 사고가 난 지난 16일 오전 8시52분 구조 요청이 들어와 1분 뒤 목포해경에 연결한 것으로 돼 있으나 해경에는 8시58분에야 처음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 측은 18일 “5분 차이지만 인명 구조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시간”이라며 “의혹이 있다면 조사 대상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해경은 여러 부분에서 미숙하게 조치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의 비난을 샀다. 생존자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배 안에 공기를 넣는 시간을 놓고 계속 말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해경은 19일 오전 11시19분 공기 주입을 시작했다. 당초 해경은 지난 17일 오전 “공기 주입을 위해 사고해역 주변에 잠수부 등이 오전 8시30분부터 대기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거짓이었다. 이때는 장비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 뒤 해경은 공기 주입 개시 시간을 계속 바꿔 발표했다. 17일 낮 12시30분에서 오후 10시가 됐다가 다시 “18일 오전에 공기를 불어넣겠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 장비가 뒤늦게 도착하고 날씨 영향으로 물살이 거세지면서 공기 주입 시기는 계속 미뤄졌다. 한 번 가족들이 희망을 갖게 했다가 낙담시킨 것이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애태우던 실종자 가족들은 화가 난 나머지 오전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해경 관계자들에게 물병을 던지며 항의했다. 결국 최상환 해경청 차장은 “18일 오전 9시50분에서 10시 사이에 공기를 넣겠다”고 했다. 이마저도 정확히 지켜지지는 않았다. 공기 주입은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더 늦게 시작됐다.

 해경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구조계획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다들 언론을 통해 ‘잠수부 투입’ 등의 소식을 접해야 했다. 속이 탄 가족들이 17일 사고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구조계획을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신속하게 알려 드릴 수 있게 하겠다”고 한 뒤에야 김석균 해경청장도 “매일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가족들은 박 대통령에게 “해경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18일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구조대의 선내 진입 여부를 놓고 혼란을 가중시켰다. 오전 10시5분 “잠수 인력이 선체 안 식당까지 진입 통로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발표해 가족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중대본은 오후 3시27분 “실패했다”고 말을 바꿨다. 중대본 해명은 “착오였다”뿐이었다.

 구조현장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일부 생존자는 사고현장으로 온 가족과 함께 집에 갔다가 실종자로 분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해경은 당일 오전 9시30분쯤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늦은 출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경은 배 안에 수많은 학생과 일반 승객이 갇혀 있는데도 이미 빠져나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는 탈출자들 구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배 안에 있었던 승객은 거의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가 가라앉기 전인 도착 당시 배 안에 남은 승객들이 일단 빠져나오도록 유도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포=최경호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