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작 하의 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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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벼농사가 대풍을 이루어 혼 분식·「7분도」등 시책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라 한다. 항상 모자라서 걱정이었던 양곡수급사정을 생각할 때 쌀이 남아 잉여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올해 쌀 수확예상은 3천5백여만 섬인데 반해서 수요는 3천2백여만 섬으로 추정되고 있어 잉여예상 쌀만도 3백여만 섬이 된다. 그 위에 이월된 쌀이8백74만 섬이나 되어 쌀 잉여는 ]천2백만 섬에 이를 것이므로 이렇게 되면 보관창고사정으로 보아 잉여 쌀을 적절하게 처리할 필요성은 절실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농정이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서 변한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매우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식량정책의 재조정은 결코 경솔히 단행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원칙을 존중하면서 현실문제를 다뤄 나가야 하겠음을 강조한다.
우선 쌀의 잉여규모 추정은 매우 보수적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확고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아직 남아있으며, 식량정책을 시급히 조정해야 할 절박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확정수확고를 파악하고 나서 연내에만 조정을 마치면 차질이 있을 수 없는 성질의 문제를 너무 조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7분도」시책은 조정하는 문제는 쌀의 장기수급전망에 따라서 판단해야할 것이다. 만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쌀의 초과공급경향이 뚜렷해진다면 소비자의 구미에 부합되는 종전의 도정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관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일시적인 공급초과 때문에 7분도 시책을 후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미각도 관습에 따라서 좌우되는 바 큰 것이라면, 좋은 쌀 나쁜 쌀을 교대로 먹게 하는 것은 쓸데없는 불평을 일으키게 할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혼 분식문제나 무미일 문제는 탄력적으로 운용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보관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가급적 많은 양을 비축시켜야하나 그러고서도 남는 것은 수입소맥을 줄여 쌀 소비로 대체시켜도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국은 앞으로 대맥보다 소맥생산을 적극 권장할 방침이라 하지만, 기후조건으로 보아 소맥증산에는 많은 애로가 있음을 유의해야한다. 그러므로 충실한 결실과 다수확을 보증하는 새 품종이 개발될 때까지는 소맥생산확대를 지나치게 서둘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유가 그러하다면 혼 분식이나 무미일 시책은 쌀의 이월이 불가능하거나 무리한 이월을 추진할 때 소요되는 비용문제를 고려해서 신축성 있게 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이월시킬 수 있는 범위까지는 충분히 비축하고 남는 부분에 한해서만 분식을 조절한다는 전제는 존중되어야한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항은 쌀의 풍작이 결과적으로 미가정책의 후퇴로 연결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점이다.
쌀의 대풍이 수매가격인상폭을 소극화 시키는 요소가 된다든지, 시중쌀 값이 수매가격에도 미달되도록 곡가정책을 방만하게 운영한다면 식량자급의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주의해야한다. 수매가격인상폭을 소극적으로 책정할 때 시중미가는 거꾸로 폭락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쌀값을 성출회기에 폭락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9분도를 허용하여 쌀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식량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안전제일주의로 다뤄야하겠으며 원칙적으로 가능한 한 이월량을 많이 확보해야한다.
다만 쌀값을 적정수준에서 정부가 유지 시켜줄 능력에 한계가 있다면 쌀 소비를 촉진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쌀값은 유지하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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