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찬사와 비판이 엇갈린 이 장편영화 『19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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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72년 『파리의 마지막 「탱고」』를 만들어 영화혁명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젊은 감독 「베르나르도·베르톨루치」가 『1900』이란 무려 3백20분 짜리 영화를 만들어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이탈리아」에 앞서 파리의 12개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된 이 영화는 1900년생의 두 사나이를 등장시켜 「이탈리아」가 「나치-파시스트」로부터 해방된 45년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에서도 『전쟁과 평화』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능가하는 장편서사시가 나올 수 있느냐는 의문은 『1900』을 보고 나면 풀려버린다.
주인공 「알프레도」는 지주의 집안에서, 「올모」는 이 지주 밑의 농업노동자의 아들로 1900년에 태어난다.
기성세대들이 계급투쟁이다, 혁명이다 하는 지주와 고용인인 농민간의 갈등 속에 방황하는 동안 「알프레도」와 「올모」는 소꿉친구로 티없이 성장한다. 「알프레도」가 진보적 자유주의 청년으로 성장하는 반면 「올모」는 공산주의 청년이 되지만 이들의 우정은 끝내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이 영화는 한 레지스탕스 소년이 45년4월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던 날 이 기쁨을 노래부르며 「포플러」숲을 걷고 있을 때 파시스트 패잔병에 의해 저격 받아 죽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은 먼저 「이탈리아」공산당을 선전한 정치영화이며 너무나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농업노동자들의 최초의 파업장면과 노동자들이 혁명을 갈구하는 것 같은 장면이 수 없이 나타난다. 이 같은 비평에 대해 『그러나 나는 이들 농민들이 지주를 존경하며 따른다는 두 계급간의 사람을 그렸다.
이점을 간파하지 말라』는 것이 「베르톨루치」의 해명이며 이 사랑은 「알프레도」와 「올모」의 우정에서도 깊이 있게 묘사되어있다.
다음은 「포르노」영화라는 비난이다. 『파리의 마지막 탱고』에서 「마리아·스나이더」를 벗겨 외설영화 논쟁을 일으켰듯이 성교장면은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된다. 특히 「베르톨루치」는 「도미니크·산다」를 벗겨 여식의 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폴란드 출신 고아로 분한 「산다」와 지주의 아들 「알도레도」의 창고 속의 정사는 약5분간 계속되는 압권이다. 처녀의 문을 얼어주는 「산다」와 비처녀인 줄 알고 덤빈 「알프레도」의 성행위 장면은 미적 감동을 일으킨다. 「포르노」영화에서 느끼는 구역질은 「베르톨루치」의 미학으로 인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베르톨루치」에 의하면 원래 『1900』을 『탱고』보다 먼저 만들려고 했으나 돈을 대는 제작자가 없었다는 것이며 『파리의 마지막 탱고』를 먼저 만들어 번 돈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버트·랭커스터」「로라·베티」「아리다·바리」「로베르·드·니로」「제라르·데파르디유」등 미·불·이 3국의 「스타」를 등장시킨 『1900』은 영화예술의 위대성을 누구나 실감케 하는 또 하나의 신기원을 세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파리에서 주섭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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